콜롬비아 정부와 반군 간 평화협정 수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2일(현지시간) 부결됐다. “평화협정이 전쟁 범죄자를 사면한다”며 반대운동을 주도한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 (가운데)이 이날 히우네그루의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히우네그루AFP연합뉴스
콜롬비아 정부와 반군 간 평화협정 수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2일(현지시간) 부결됐다. “평화협정이 전쟁 범죄자를 사면한다”며 반대운동을 주도한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 (가운데)이 이날 히우네그루의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히우네그루AFP연합뉴스
반세기 동안 지속돼온 콜롬비아 내전이 종식을 눈앞에 두고 무산됐다. 콜롬비아 정부와 최대 반군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이 체결한 평화협정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서다.

치안 우려를 없애 해외 자금을 끌어들이고 풍부한 자원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겠다는 콜롬비아 정부의 청사진이 안갯속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평화협정을 전제로 추진된 각국 정부의 지원이 일시정지됐다. 지난 7월 콜롬비아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한 한국도 당분간 기대한 경제효과를 누리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내전의 희생과 아픔을 과소평가

반군 거부감 큰 콜롬비아 민심…'52년 내전 종식'도 거부했다
콜롬비아 선거관리위원회는 2일(현지시간) 정부와 FARC의 평화협정 수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부결됐다고 발표했다. 개표 결과 찬성은 49.78%, 반대는 50.21%였다.

2012년 11월부터 협상을 이끌어온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은 결과를 인정하면서도 “평화협정은 여전히 유효하며 임기 마지막 날까지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투표가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띠고 있어 자신의 정치 생명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투표 당일만 하더라도 산토스 대통령은 평화협상 체결을 계기로 유력한 노벨평화상 수상 후보에 올랐다.

국민이 평화협상을 받아들이지 않은 배경은 FARC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했다. 콜롬비아 분쟁분석자원센터의 보르헤스 레스트레포 대표는 “평화의 열망이 크기는 했지만 반군에 대한 증오를 이기지 못했다”며 “납치와 강탈, 학살이 수십년간 이어지면서 누적된 아픔을 과소평가했다”고 설명했다. 1964년 FARC가 등장한 이후 52년간 내전으로 25만명 이상이 숨졌고, 부상자 실종자 등까지 더하면 희생자는 784만명에 이른다.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현 상원의원)은 “내전 과정에서 저지른 반군 범죄에 대해 실형을 면해주도록 하는 조항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평화협정을 반대해왔고 상당수 국민이 이에 공감했다. 투표일에 초강력 허리케인 ‘매슈’가 평화협정 지지자가 많은 지역을 덮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국제사회 지원도 ‘올스톱’

국민투표 부결로 콜롬비아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00일 전 영국에서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을 내렸을 당시의 불확실성을 연상케 할 정도로 찬성 측과 반대편 전부 어쩔 줄 모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산토스 대통령은 평화협상을 어떻게든 되살리겠다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콜롬비아의 내전 종식을 환영하며 지원책을 내놨던 국제사회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유럽연합은 평화협정 이행을 돕기 위해 6억유로(약 740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캐나다도 각각 4억5000만달러(약 4970억원)와 2100만캐나다달러(약 176억원)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모두 기약이 없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산토스 정부는 평화협정을 통해 마약장사로 얼룩진 콜롬비아 경제를 되살리고자 했으나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해외투자자에게 토지 소유권을 넘기는 등의 근본적인 경제시스템 개혁도 추동력을 잃었다”고 전했다. 중남미 4위의 원유 생산국인 콜롬비아는 유가 하락으로 경제성장률이 3년 연속 하락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