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캐롤라이나 유세서 "개인적인 아픔 유발한 발언 후회"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출마 후 처음으로 자신의 발언들에 대한 '후회'를 표명했다.

CNN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는 18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 샬럿 유세에서 "열띤 토론 중에 그리고 여러 이슈에 대해 얘기하다가 때로는 올바른 단어를 고르지 않거나 잘못된 말들을 할 때가 있다"며 "나도 그랬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어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발언들을) 후회(regret)한다"며 특히 "개인적인 아픔을 유발한" 발언들에 대해 후회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러한 이슈들에 소모되기에는 (이번 대선에) 너무 많은 것들의 성패가 걸려있다"며 환호하는 군중을 향해 "항상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는 이날 텔레프롬프터(원고표시장치)를 통해 사전에 준비된 원고를 읽어나갔다.

후회스러운 과거 발언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트럼프의 '후회' 발언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급격하고 의미심장한 태도 변화"라고 표현했다.

그간 트럼프는 자신의 발언들이 거센 논란을 가져오는 동안에도 단 한 차례도 발언을 철회하거나 후회한다고 말하거나 사과한 적 없다.

최근 무슬림계 전사자 부모를 향한 무슬림 비하 발언으로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거친 비난을 받을 때도 그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해 베트남전 참전용사 출신의 존 매케인(공화·애리조나) 상원의원에 대해 "매케인이 포로로 붙잡혔기 때문에 전쟁영웅이라는 것인데, 나는 붙잡히지 않은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비꼰 발언에 대해서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단언한 바 있다.

당시 트럼프는 "난 어떤 것도 후회하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며 "내가 한 말은 내가 한 말"이라고 말했다.

'후회 발언' 이외에도 이날 연설에서 트럼프는 평소와는 사뭇 다른 '정돈된' 언어를 구사했다.

트럼프는 공장 노동자와 참전용사, 멕시코 국경 인근에 사는 사람들을 특정하며 "목소리를 갖지 못한 이들을 위해 진실을 말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 내의 모든 피부색의 아이들이 '아메리칸 드림' 안에 포함될 때까지 쉬지 않겠다"며 상대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유색인종 커뮤니티를 표로만 본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트럼프가 지금까지 중에 가장 포괄적이고, 당 노선에 맞는 합리적인 연설을 했다"며 "공화당 지도부가 수개월 동안 기다려왔던 메시지"라고 표현했다.

트럼프의 이 같은 급격한 변화는 트럼프가 지지율 하락 속에 대선을 80여 일 앞둔 시점에서 캠프 조직을 전격 개편한 지 하루 만에 나왔다.

이날 연설은 캠프 캐편 이후 첫 연설이었다.

트럼프 캠프는 보수성향 인터넷매체 브레이트바트뉴스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븐 배넌을 캠프의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하고, 여론조사 전문가 켈리앤 콘웨이를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승진시켰다.

콘웨이는 18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메시지를 보다 선명하게 할 것"이라며 "트럼프가 자신의 방식에 자신감을 갖도록 하겠다"고 '트럼프다운 트럼프'를 전략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렇게 '달라진 트럼프'의 모습이 남은 대선전에서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주목된다.

이날 유세장에 모인 트럼프 지지자 중 일부는 "부동층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정치인처럼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한 반면 일부는 "트럼프가 (사전 원고없이) 자유롭게 말할 때가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폴리티코는 "대선까지 80여 일 남고, 부재자 투표까지는 몇 주만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흠잡을 데 없이 막판 질주를 한다 해도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다"며 달라진 트럼프가 추세를 뒤집긴 힘들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클린턴 측은 이날 트럼프 발언의 진정성을 평가 절하했다.

클린턴 캠프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트럼프는 대선 시작과 동시에 사람들을 모욕했고 그로부터 428일 동안 부끄러움이나 후회 없이 계속 그래 왔다"며 "오늘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은 트럼프의 연설문 작가와 텔레프롬프터가 트럼프가 사과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자신이 한 많은 모욕과 분열적인 발언 가운데 어떤 것을 후회하는지 말하고, 완전히 바뀌기 전까지는 오늘의 사과는 그냥 잘 쓰인 문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mih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