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명가 vs 부동산재벌' 등 다양한 대결구도
역대 최고 '비호감' 후보…진흙탕 싸움 불가피
변곡점마다 판세 요동…스윙스테이트에서 승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각각공식 지명되면서 미국 대선 시계도 빨리 돌아가고 있다.

100일 앞으로 다가온 올해 대선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 '최초의 아웃사이더 대통령' 등 두 후보 중 누가 되더라도 미국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다는 점에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최초, 또 최초…여러 면에서 대조적인 후보 대결 = 두 후보는 '여성 대 남성', '기성 정치인 대 아웃사이더', '대통령 가문 대 부동산 재벌' 등 다양한 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대선 구도의 골간은 '여성과 아웃사이더' 간 대결이라는 점이다.

민주당 188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선후보가 된 클린턴은 당선되면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 이후 228년 만에 첫 여성 대통령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여성이 미 정치무대의 시작인 주(州) 의회 의원으로 처음 당선된 1894년 이후 122년 만에 대선이라는 마지막 '유리 천장'을 깨뜨리는 주인공이 된다.

그는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후광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정치 명가를 완성했다.

주지사의 아내, 퍼스트레이디로 빌 클린턴의 그늘에 가려있다가 2000년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적 홀로서기에 성공했고, 2008년 대선후보 경쟁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했지만, 국무장관을 맡아 절치부심한 끝에 이번에 대선후보 자리를 거머쥐었다.

반면 공화당의 트럼프는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정치적 이방인이다.

아버지의 도움을 바탕으로, 부동산 사업에 나서 특유의 감각과 비전으로 세계 곳곳에 호텔, 카지노, 골프장 등을 일군 글로벌 비즈니스맨 출신이다.

그는 정치 문외한이나 다름없었지만 오랜 세계화 파고 속에서 일자리와 소득은 감소하는데도 정쟁만 일삼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백인서민과 중산층의 불만을 자신의 목소리로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공화당 경선에서 내로라하는 정치인 16명을 물리치고 자력으로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인종·여성·장애인 차별 발언을 비롯한 각종 막말에도 불구하고 '미국 우선주의'와 정치적 신선함을 앞세워 유권자를 사로잡은 그가 본선에서도 파란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역대 최고급 '비호감' 후보 = 클린턴과 트럼프는 모두 역대 최고의 '불신 후보'라는 불명예와 이에 따른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갤럽이 지난 16~23일 성인 3천5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에 대한 비호감도는 57%, 트럼프에 대한 비호감도는 59%로 나타났다.

호감도는 38%(클린턴)와 36%(트럼프)에 그쳤다.

클린턴은 벵가지 사태, 이메일 스캔들 등으로 굳어진 '정직하지 않다'는 이미지, 또 퍼스트레이디를 포함해 20년 가까이 대중에 노출된 탓에 나오는 '식상한' 느낌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트럼프는 좌충우돌하는 성격과 행동 탓에 글로벌 지도국가의 리더로서 불안하다는 점이 약점이다.

사실상 올해 대선이 인기가 없는 두 후보 가운데 누가 비호감도가 덜한지를 가리는 독특한 선거 양상으로 흐르고 있어, 비방전의 수위가 역대 최고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변곡점마다 요동치는 판세 = 100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판세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의 예측불허다.

클린턴은 지난달 말, 두 자릿수대 리드를 지키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올 만큼 트럼프에 크게 앞섰다.

반면 트럼프는 경선 승리로 사실상 공화당의 대선후보가 된 뒤에도 멕시코계 판사를 향해 인종폄하 발언을 하는 등 악수를 잇달아 두면서 정치적 위상이 크게 위태해졌다.

공화당 주류 정치인들이 외면한 탓이었다.

그러나 이달 들어서는 클린턴을 향한 여론이 급랭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의 권고를 받아들여 법무부가 그를 괴롭혀온 '이메일 스캔들'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한 것이 '짜고 치기' 의혹을 사면서 오히려 화근이 됐다.

두 후보가 이처럼 정치적 변곡점을 만날 때마다 여론이 요동치고 있어 지금으로선 판세를 가늠하기 어려운 국면이다.

우선 이달 공화당 전당대회(18~21일) 다음날부터 사흘간 실시된 CNN-ORC 공동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는 48%를 얻어 클린턴(45%)에 3%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한 달 전 조사에서 7%포인트 뒤졌지만, 전당대회 효과에 힘입어 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기관 라스무센이 민주당 전당대회(25~28일) 기간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클린턴이 43%를 얻어 트럼프(42%)를 1%포인트 리드했다.

이 기관 조사에서 클린턴이 앞선 것은 처음이어서, 클린턴이 컨벤션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스윙스테이트' 승부 갈라 = 클린턴과 트럼프 후보의 운명은 양당 지지율이 비슷한 '스윙스테이트(경합주)'에서 결정된다.

역대 대선에서도 각 당의 전통적 우세지역을 차지하고 박빙 승부가 펼쳐지는 경합주에서 승리한 후보가 백악관에 입성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선의 '7대 경합주'로 꼽힌 오하이오와 플로리다, 아이오와, 뉴햄프셔, 위스콘신, 버지니아, 콜로라도에서 완승하며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됐고, 2012년에도 이들 7개 주에서 모두 승리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역시 오하이오와 플로리다, 콜로라도 승리로 재선 가도를 달렸다.

올해 대선에서는 오하이오, 플로리다, 아이오와, 뉴햄프셔 등 전통적 경합주에 더해 메인, 펜실베이니아, 애리조나 등도 경합주로 떠올랐다.

메인, 코네티컷은 민주당 성향이 강했지만 백인 인구 비중이 높은 지역이어서 트럼프 바람이 일고 있고, 펜실베이니아도 대표적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지대)'로 꼽히면서 트럼프 쪽으로 표심이 흔들리고 있다.

반대로 애리조나와 조지아는 히스패닉 등 이민자 비중이 확대되면서 이민정책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민주당에 유리해졌다.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k02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