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잔치 된 트럼프 대관식, 미국서 비난받지 않는 이유
지난 18일부터 미국 오하이오주 북부의 상공업도시 클리블랜드에서 열리고 있는 공화당 전당대회 ‘최고 스타’는 누굴까. 당연히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 1년여 만에 당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된 도널드 트럼프일 것이다.

그러나 행사장에 참석한 공화당원이나 미국 언론의 반응은 달랐다. 트럼프의 다섯 자녀 중 첫째 부인 이바나가 낳은 도널드 트럼프 2세와 이방카 트럼프, 에릭 트럼프 세 명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아버지와 다르다는 점 때문에 주목받는다. 트럼프가 상스럽다면 이들은 반듯하고, 트럼프 언행이 거칠다면 이들은 예의 바르다는 평을 받는다.

당원들은 연단에 오른 이들의 연설에 환호했다. 19일 연설한 장남 트럼프 2세는 ‘아버지보다 낫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육아와 선거캠프 관리, 사업에서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이방카를 두고 ‘2024년 이방카 대통령’이라는 팻말이 등장할 정도였다. 20일 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 나선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는 당원에게 “봐라. 트럼프가 얼마나 자녀들을 잘 키웠는지”라고 소개했다.

자녀들이 부모인 후보를 적극 지원하는 일은 미국 선거에서 드문 풍경이 아니다. 2012년 공화당 대선주자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다섯 명의 아들을 연단에 세웠다. 뉴욕타임스는 “아들들이 다소 답답해 보이는 롬니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켰다”며 “롬니에게는 다섯 명의 대변인이 더 있다”고 평가했다. 2008년 민주당 대선 경선 때 첼시 클린턴은 ‘엄마’ 힐러리가 ‘정치 풋내기’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보다 얼마나 더 유능하고 경험이 많은지 역설했다.

한국에선 대통령의 자녀를 잘 알지 못한다. 이들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암묵적 금기사항이다. 선거 때 도왔더라도 당선 후엔 뒤로 물러서야 한다. 청와대엔 이들을 관리하는 민정수석실이 있다. 공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통로가 막힌 이들은 항상 청탁과 금품수수라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녀가 모두 이렇게 구속됐다.

트럼프 2세는 아버지가 대선 유세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당하게 밝혔다. “애들 다섯을 어느 정도 키우고 나면 정치를 하고 싶다”고. 한국에서는 난리가 날 일이지만 여기선 그럴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 전당대회장에서 만난 제프 스콧 ABC 방송 기자는 “시장에서 공개적으로 능력을 인정받는다면 대통령의 자녀라고 역차별할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클리블랜드=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