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저격 이후 반감 표면화하고 활동가들마저 피로감
오바마 "존중하는 태도 가져야 진정한 변화" 평화시위 촉구

7월 들어 꼭 3년을 맞은 미국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중대한 고비를 맞았다.

미국 경찰의 공권력 남용, 특히 흑인을 상대로 과도한 무력을 사용하는 인종차별적 행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성과를 냈지만, 미국의 일반 시민은 물론 이 운동을 주도하는 활동가들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 지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7일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경찰의 흑인 총격사건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흑인 남성 마이카 존슨이 경찰 5명을 저격,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일각에서는 이 운동이 '증오'를 부추겼다는 책임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흑인의 생명도 소중' 운동은 2013년 7월 13일부터 시작됐다.

당시 흑인들과 인권운동가들은 비무장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틴에 총격을 가해 숨지게 한 백인 자경단원 조지 지머먼이 무죄로 풀려난 데 항의하면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말이 퍼지면서 일종의 사회운동의 형태를 띠게 됐다.

경찰이 흑인을 상대로 부당한 폭력을 행사할 때 그 과정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뒤 퍼뜨리면서 이 말을 주제어로 함께 기록하는 일도 일반화됐다.

그러나 댈러스 경찰 피격 사망 사건은 그동안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의 목소리가 커지는 데 반감을 지녔지만, 공개적으로는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백인 보수층이 자신들의 주장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WP는 분석했다.

당장 러시 림보와 같은 보수 논객들은 이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들을 "증오 범죄를 저지르는 테러리스트 그룹"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공화당 주 하원의원 빌 제들러도 트위터에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의 구호가 댈러스 경찰들을 쏜 저격범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보수성향 온라인매체 드러지리포트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경찰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같은 공격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댈러스 사건이 더 많은 미국인에게 이 운동의 취지를 전달하는 것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당초 진보층을 중심으로 지지를 받았던 이 운동은 최근 몇 년 사이 경찰에 의한 총격 사건이 널리 알려지면서 점점 더 폭넓은 미국인들에게 서서히 공감을 얻어왔다.

그러나 앞서 백인 경관의 총격으로 흑인이 숨진 데 대한 분노로 들끓던 소셜미디어는 7일 이후 댈러스 사건에 대한 격렬한 반응이 뒤덮었고, 그 분노는 시위대와 시민 운동가들에게 직접 향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반(反) 경찰 구호는 중단돼야 한다. 그것은 끔찍하다"고 썼다.

이에 NYT는 이 운동이 시작된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흑인 인권운동가들의 피로 역시 가시화되고 있다.

인권운동가 클리프턴 키니는 WP와 한 인터뷰에서 비무장 흑인이 경찰 총격에 숨지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 현상에 대해 "많은 운동 참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피로를 느낀다"고 말했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잦은 부당한 공권력 집행과 댈러스 경관 매복살인사건과는 별개라는 입장이지만, 이 운동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갈지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WP는 지적했다.

이 운동이 본격화된 지난 약 3년간 미국 약 20개 주에서는 공무를 수행하던 경관이 '보디캠' 같은 장비를 이용해 과정을 녹화하도록 하거나 부당한 공권력 집행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상위 기관이나 연방정부 차원의 조사가 이뤄지도록 하는 등의 행정 변화가 이뤄져 왔다.

이러한 가운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공정한 사법 집행인지를 우려한다는 사람이 경찰관을 공격한다면 처음 가졌던 문제의식을 저버리게 된다"고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스페인에서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와 만난 뒤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하며 "경찰의 (부당한) 총격이나 인종을 바탕으로 한 형사사법체계의 편파적 적용을 우려하는 사람이라면, 진실되고 진지하며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미국 사회에서 진정한 변화를 끌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미국 역사에서 노예해방론자, 시민권 운동가 등에 의해 이뤄진 논쟁적 시위들은 종종 지금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과 마찬가지로 비판론에 처하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이 운동들이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옳은 일을 하고,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운동가들에게 시위 현장에서 나온 모든 말들에 대한 책임을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번 주 사람들은 상처받고 분노했다.

하지만,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 참여한 압도적 대다수가 진실로 원한 것은 경찰과 지역사회의 더 나은 관계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서울연합뉴스) 김세진 특파원 김정은 기자 smi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