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부동산펀드 '펀드런'에 줄줄이 환매중단…伊 은행들 부실 위기감 고조
큰손들 다시 엔화·금·채권 등 안전자산으로…아시아 증시 이틀째 하락

지난달 24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결정된 충격을 딛고 지난주 내내 순항하던 국제금융시장이 금주 들어 다시 출렁이고 있다.

영국 부동산 시장의 불안이 심화하면서 영국 부동산펀드에서 투자자들이 돈을 줄줄이 빼가는 '펀드런'(fund run) 조짐이 나타난 게 브렉시트 후폭풍을 재점화하는 도화선이 됐다.

여기에 다른 악재도 쌓이고 있다.

유럽 금융시장의 약한 고리로 여겨졌던 이탈리아 은행의 부실채권 문제가 급부상했다.

앞서 지난달 29일에는 독일 도이체방크와 스페인 산탄데르 등 두 은행의 미국지점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연거푸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나아가 브렉시트로 세계 경기가 하방압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은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6일 글로벌 금융·상품시장에서는 다시 위험회피 심리가 고조되며 안전자산인 일본 엔화가치가 급등하고 파운드는 급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일본을 중심으로 주요국 주식시장은 반락하고 있다.

◇ 영국 부동산 가격 하락 우려에 英 부동산 펀드런…환매중단 잇따라
브렉시트 후폭풍은 부동산 시장에서 먼저 나타났다.

영국 부동산은 애초 브렉시트 투표 전부터 직접적인 악영향이 우려됐던 부문이다.

영국 재무부는 투표 이전에 내놓은 예측에서 만약 EU를 탈퇴하면 주택가격이 최대 18% 떨어질 것으로 봤다.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런던을 중심으로 부동산 매매계약 취소가 잇따랐고 유럽의 유명 펀드는 런던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거둬들였다.

IHS이코노믹스는 영국 주택가격이 올해 하반기에 최대 5%, 2017년에 추가로 5%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고, 리서치업체 그린 스트리트 어드바이저는 런던의 업무용 부동산 가격이 3년 안에 최대 20%까지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런던을 떠나려는 외국기업의 움직임도 구체화하고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투자자들은 부동산펀드에서 돈을 빼가기 시작했다.

환매 요구가 빗발치자 펀드 운용사들은 투자자들의 이익 보호를 이유로 환매를 중단했다.

스탠더드라이프 인베스트먼트가 제일 먼저였다.

이 회사는 29억 파운드(약 4조4천억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영국부동산펀드의 환매를 4일 정오(현지시간) 무렵에 중단했다.

이 회사 측은 "영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 탓에 환매 요구가 늘어난 데 따른 것"이라며 "모든 펀드 투자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투자수익의 위축을 피하고자 환매중단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비바 인베스터스 부동산펀드는 5일 18억파운드(약 2조7천억원) 규모 펀드의 거래를 중단했고 M&G 인베스트먼츠도 같은날 44억파운드(약 6조7천억원) 규모의 부동산펀드에 대한 환매를 멈췄다.

환매중단 조치는 다른 영국 부동산펀드로 도미노처럼 확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제는 이들 펀드가 가진 현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쏟아지는 환매 요구에 응하라면 부동산 자산을 팔아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형 부동산 매물이 한 번에 시장이 나오면 가격 하락을 촉발하며 영국 부동산 시장 전반을 짓누를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영국 부동산펀드들은 환매 요구 급증에 자금인출을 중단한 바 있는데, 당시 펀드들이 빌딩 매각에 나서면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 가격은 급락했었다.

중앙은행인 영란은행도 5일 내놓은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그동안 외국자본이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대거 유입됐다.

2009년 이래 부동산 전체 거래(금액 기준)의 약 45%가 외국인 투자자였다"면서 "최근 부동산펀드 주가 급락은 부동산 시장의 조정 위험을 반영한다"고 진단했다.

◇ 이탈리아 은행 부실 우려에 유럽금융주식·채권가격 벼랑끝
유럽 금융시장의 약한 고리인 이탈리아 은행의 부실에 대한 우려는 유럽 금융주식과 채권 가격을 벼랑 끝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이탈리아 은행권이 보유한 부실채권(NPL) 규모는 전체 유럽 은행권 보유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천600억 유로(약 462조원)나 돼 브렉시트 후폭풍에 가장 취약한 부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로 유럽 금융시장에서 이탈리아 은행의 주식과 채권은 휴짓조각이 돼가고 있다.

이탈리아 주식시장에서 은행업종주가지수는 올해 들어 반 토막이 났고, 이탈리아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1.24%로 스페인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인테사 은행의 코코본드의 가격은 91센트로 3.2% 떨어졌고, 이탈리아 최대 은행인 우니크레디트 후순위채는 2.3% 급락한 96센트를 기록했다.

1472년 창설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이자 규모에 있어 이탈리아 3위 은행인 방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BMPS)가 발행한 후순위채 가격은 5일(현지시간)에만 10% 넘게 떨어졌다.

이번주 전체로는 무려 16% 폭락해 이날 77센트에 거래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이 2018년까지 부실채권(NPL)을 145억 유로, 부실대출비율을 20% 수준으로 줄이라고 권고한 뒤 이 은행의 주가는 이번 주에만 25% 이상 떨어져 사상 최저가로 추락했다.

이 은행의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320bp(1bp=0.01%) 뛰어 사상 최고치인 1,646bp까지 치솟았다.

CDS는 채권을 발행한 기업이 부도가 났을 때 손실을 보상해주는 금융파생상품으로, CDS 프리미엄이 높아졌다는 것은 기업의 신용도가 낮아져 채권을 발행할 때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의미다.

필립 힐데브란트 블랙록 부회장은 이날 FT 기고 글에서 "유럽 은행부문은 대차대조표가 취약한 데다 성장세도 약화해 분명히 문제가 있다"면서 "유로존 은행주 주가는 올해 들어 40% 넘게 빠졌고, 브렉시트로 영국은행만큼 타격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 다시 안전자산으로 쏠리는 자금…엔화·금·국채값 급등
브렉시트 후폭풍에 대한 우려에 글로벌 금융·상품시장에서는 위험회피 심리가 고조되면서 안전자산인 일본 엔화가치와 금값, 국채값이 폭등하고 있다.

6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일본 엔화 환율은 달러당 100.88엔까지 떨어져 100엔선을 위협하고 있다.

브렉시트 결정전인 23일 달러당 105엔까지 반락했던 엔화가치는 다시 브렉시트 결정 직후 수준으로 치솟았다.

달러가치도 상승했다.

10개 국가 통화 대비 달러화의 상대적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도 브렉시트 이전보다 2.2% 올랐다.

금값은 이날 전거래일보다 1.44% 오른 온스당 1천368.59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브렉시트 결정 전 온스당 1천260달러대였던 금값은 이후 8.5% 폭등했다.

주요국 국채 금리도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며 떨어지고 있다.

금리가 떨어지면 국채가격은 오른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5일 1.363%까지 떨어져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일본의 20년물 국채금리는 사상 처음 0%를 찍었다.

반면에, 브렉시트 이후 대표적 위험자산인 파운드화 가치는 급락하고 있다.

이날 오전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는 전날보다 0.5% 하락한 파운드당 1.2961달러를 기록해 1985년 6월 이후 31년 만에 1.3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유럽과 미국에 이어 아시아 증시는 내리고 있다.

일본 닛케이 평균주가는 이날 오전 10시 50분 현재 전거래일보다 2.7%, 토픽스지수는 2.6% 급락하고 있다.

닛케이지수는 전날 7거래일간의 회복 랠리 끝에 하락 반전했다.

한국 코스피는 1.6%,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0.3% 각각 떨어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yuls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