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떠나면 끝"…추가이탈 막기위해 응징·보복 태세…수속 빨리 밟자
브렉시트파 "탈퇴 협상 서두를 것 없다"…탈퇴통보 늦추며 협상력 강화 모색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앞두고, 탈퇴 반대파인 조 콕스 하원의원의 피살을 계기로 반대 여론이 찬성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양측 입장은 여전히 팽팽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아직 무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외신들은 최근 투표결과가 브렉시트 찬성으로 나올 경우 첫 100일에 영국과 EU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저마다 전망을 내놓고 있으나, 커다란 정치적, 경제적 충격과 혼란이 있으리라는 것 외엔 자신 있게 미래의 지도를 그리지 못하고 있다.

한가지 일치하는 점은 EU의 강대국 독일과 프랑스가 다른 EU 회원국들이 영국의 선례를 따르는 일이 없도록, EU를 떠난 영국에 아픈 응징이나 보복을 가함으로써 결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는 것이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이 슈피겔지와 인터뷰에서 "떠난 것은 떠난 것"이라고 밝힌 게 이런 입장을 압축한 것이다.

EU를 떠난 후에 독자적 국경 통제, 즉 이민 통제권을 영국이 가지면서도 EU 단일시장에 남을 수 있도록 협상하겠다는 영국의 희망은 언감생심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브렉시트파는 자신들은 유럽을 떠나지는 않겠지만, 단일시장은 떠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한다.

단일시장에 남고, 그렇게 하기 위해 이민 통제권을 반납하겠다는 것은 브렉시트 반대파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EU내 주요국가들은 영국으로부터 탈퇴통보를 받으면 EU와 영국 간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한 협상을 2단계로 분리, 진행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21일 내다봤다.

영국의 EU 탈퇴를 위한 정치적·법적 문제를 우선 해결하고, 그 뒤 EU 회원국이 아닌 영국과 통상·금융 분야 협정 문제를 다룰 것이라는 것이다.

영국과 새로운 무역협상 때 영국이 EU 회원국으로서 권리와 지위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것을 봉쇄하겠다는 뜻이다.

EU와 EU 회원국이 아닌 영국 간 무역협정 협상은 EU 헌법 격인 리스본조약 50조 발동에 따른 탈퇴 협상 기한 2년을 훨씬 넘길 수밖에 없게 된다.

"영국은 EU와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한 고통스러운 협상을 하느라 최소 7년은 연옥을 겪게 될 것"이라고 도널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주장했다.

영국이 리스본조약 50조에 따라 EU 탈퇴를 EU에 공식 통보한 후 진행될 2년간의 협상도중 영국이 EU와 결별을 번복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고 영국의 가디언지는 지난달 31일 말했다.

EU가 영국에 제시한 협상 조건이 매우 박한 것을 구실로, 영국 정부가 영국 의회에 다시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국민 투표 이후의 가상 시나리오

▲6월24일 금요일 브렉시트 결정 첫날
밤새 개표를 거쳐 이른 오전 결과를 받아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금융시장 개장에 앞서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민의를 존중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영국 재무부와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 유럽중앙은행(ECB)은 시장혼돈을 막기 위해 그동안 비밀리에 준비해뒀던 비상대책들을 신속히 쏟아내기 시작한다.

충격에 빠진 유럽 정치권이 앞으로 이어질 혼란과 혼돈을 우려하는 가운데 EU 재무장관들은 이날 저녁 비상회의를 갖고, 이르면 주말에 EU 비상 정상회의를 개최키로 한다.

영국 화폐 파운드화가 요동치고, 스위스중앙은행이 공격적으로 개입하며 전 지구적으로 시장 불안이 증폭된다.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통합의 꿈은 아직 살아 있다며 유럽의 더욱 강한 통합을 다짐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EU 집행기관인 유럽집행위원회측은 영국의 '이혼' 결정에 "빨리 이혼 절차를 끝내자"며 영국의 귀를 잡아 끌어내려는 자세를 취한다.

반면 영국의 브렉시트측은 영국과 EU가 이혼한 후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서 EU한테만 유리한 카드가 있는 게 아니라면서 '좀 더 품위 있고 차분하게' 이혼 수속 절차를 밟자고 맞선다.

▲첫 주
EU 정상들은 브렉시트 첫 주말인 25일 EU 사상 처음으로 영국의 캐머런 총리를 빼놓고 EU 비상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이튿날 스페인에서 실시되는 총선을 겨냥해, EU는 영국이 빠지더라도 여전히 강하다는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

프랑스와 독일도 2017년 선거에서 자국 내 EU 회의론자들의 도전에 직면한 터다.

탈퇴를 선택한 영국에 "어떤 혜택을 주지 말까"를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영국 총리를 참석시키지 않을 것이다.

시장이 혼란에 휩싸이고 유럽 대륙에 걸쳐 EU 회의론자들이 의기양양하는 상황에서 EU 정상들은 EU 보존을 위한 본능적 조치로 더욱 통합된 유럽을 지향한다는 결의를 담은 공동선언을 발표한다.

이 과정에서 영국과 유대관계가 강한 몰타, 키프로스, 폴란드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면서 EU내 이견이 드러날 수도 있다.

유로권 밖에서 반EU 정서가 강한 헝가리, 폴란드, 스웨덴이 손잡고 프랑스 등의 EU 통합 강화 움직임을 견제하고 나선다.

그러나 브뤼셀의 EU 본부에선 영국을 가혹하게 다뤄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유럽통합에 회의적인 다른 회원국들이 영국을 따라 나가도 괜찮다는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1주일 후쯤이면 영국은 EU 회원국들이 영국과 탈퇴 협상 조건을 협의하는 회의 자리에 초대받지 못하게 된다.

▲둘째 주
캐머런 영국 총리는 EU에 잔류하면서 재협상하겠다는 자신의 입장이 국민투표로 거부된 만큼 사퇴하든가, 아니면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탈퇴 협상을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며 가을까지 총리직에 남으려 할 수 있다.

브렉시트 반대 입장인 영국의 가디언지는 이같이 캐머런 총리의 즉각 사퇴 가능성도 열어뒀으나, 열렬한 브렉시트 찬성 입장인 영국의 스펙테이터는 지난 11일 전망 기사에서 "캐머런은 공복 의식이 매우 강한 만큼, 그냥 사퇴함으로써 국민의 공포감을 증폭시키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앞으로 EU와 탈퇴 협상을 이끌 지도력은 이미 상실했기에 10월 보수당 전당대회 때까지만 유임할 것이라고 스펙테이터는 예상했다.

캐머런이 조기 사퇴하면,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이 이어받을 것이 유력하다.

캐머런 총리는 국민투표 시행 전 브렉시트 결정이 나면 즉각 리스본조약 50조를 발동하겠다고, 즉 EU에 탈퇴를 공식 통보하겠다고 말해온 만큼 둘째 주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통보가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브렉시트 측은 즉각 발동론에 대해 "자신의 입에 총구를 집어넣고 방아쇠를 당기는 미친 짓"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즉각 발동론을 브렉시트의 위험성을 과장하려는 목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도력을 상실한 캐머런 대신 정국 주도권을 쥔 브렉시트 지도자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과 존슨 전 런던시장은 브렉시트 결정이 났더라도 서둘러 문을 나설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스펙테이터는 "50조 즉각 발동은 일종의 파괴행위"라며 "캐머런이 조국에 그런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브뤼셀의 EU 본부와 EU 각 회원국 정부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

몇 달간, 어쩌면 1~2년간 협상안을 짜면서"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다른 나라들이 공식통보를 채근하더라도 " 법적 근거는 불명확하다"고 말해 브렉시트파는 EU에 대한 통보와 협상을 최대한 늦추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영국이 탈퇴 공식통보를 무한정 늦출 수는 없다.

EU 입장에선 영국과 탈퇴 협상이 늦춰질수록 협상력이 약화할 것이기 때문에, 여름 끝 무렵이면 리스본조약 50조 발동을 통보해야 한다는 압력이 거세지게 된다고 가디언은 예상했다.

▲가을
영국의 공식통보로 리스본조약 50조가 발동되면, EU 최고의결기구인 각료이사회가 가중다수결 원칙에 따라 결정된 협상 권한을 EU 집행위원회에 내린다.

이에 영국 정부는 8만 페이지에 이르는 각종 EU 협정들을 재협상하면서, 영국 국내법에서 남길 것과 버릴 것을 정해야 한다.

이 일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의회가 법 정비에 수년을 매달려야 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인구 겨우 5만5천 명의 그린란드가 지난 1985년 유럽경제공동체(EEC)에서 탈퇴할 때도 탈퇴 협상 마무리에 2년이 걸렸다.

브렉시트 파는 어업과 농업 협상이 비교적 쉬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노르웨이와 EU 간 40개 어종을 대상으로 한 어업협상에 4개월이 걸리는데, 영국과 EU간 어업협상 대상은 140개 어종에 이른다.

▲겨울
영국과 EU 간 예산지급 정산, 영국과 EU 간 시민권 상호 인정, 영국 출신 EU 공무원의 연금, 영국 내 EU 기관의 이전 등에 대한 협상은 2년 내 타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관세 등을 포함한 장기적 협상 이슈인 통상관계는 별개로 다뤄진다.

▲2017년
협상이 진행되면서 EU와 새로운 무역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브렉시트 파의 낙관이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브렉시트 파는 영국이 EU 회원국들과 무역에서 커다란 적자를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EU 단일시장에 무관세로 입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독일이 영국 자동차 시장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프랑스 농민이나 이탈리아 패션 회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낙관이다.

그러나 브렉시트 반대파는 영국 수출품의 44%가 EU 시장에 의존하는 반면 EU 수출품은 8%만 영국 시장에 의존하는 것을 가리켜 영국이 약자라고 보고 있다.

서비스, 특히 금융서비스 분야는 협상 타결이 더욱 어렵다.

프랑스와 아일랜드가 런던으로부터 금융시장 중심 역할을 빼앗아 가겠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2017년 후반에서 2018년
프랑스와 독일의 총선이 끝나고 이들 나라에서 EU 회의론자들이 패퇴하게 된다.

영국이 EU와 탈퇴 협상에서 겪는 어려움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EU와 영국 간 협상이 2년 내 타결되지 않으면 영국은 EU와 세계무역기구(WTO) 표준 규정에 따른 통상관계로 가게 된다.

EU와 영국 간 탈퇴 협상 기간 내내 영국에선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가 새로운 이슈로 힘을 받게 된다.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y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