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계 미국인, 게이클럽서 총기난사·인질극…부상자도 53명 넘어
용의자 범행직전 911에 전화걸어 IS에 충성서약…IS 연계매체 "우리 소행"
경찰 "잘 조직되고 준비된 범행"…용의자 오마르 마틴 인질극 도중 사살돼
오바마 "테러·증오행위"…'테러 예방' 대선전 쟁점 급부상할듯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한 게이 나이트클럽에서 12일 새벽(현지시간) 인질극과 함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최소한 50명이 숨지고 53명 이상이 다쳤다.

희생자 규모가 2007년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32명 사망, 30명 부상)을 크게 웃도는 이번 참사는 미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기록됐다.

특히 총격사건 용의자로 확인된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이 범행 직전 911에 전화를 걸어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충성 서약을 한 것으로 알려져 미국 사회에 큰 충격에 빠졌다.

또 2001년 9·11 사태 이후 미국에서 터진 최대 테러사건으로 인해 '테러예방'이 대선 쟁점으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총격은 새벽 2시께 올랜도에서 인기 있는 게이 클럽인 '펄스'에서 발생했다.

소총과 권총, 폭발물로 의심되는 '수상한 장치' 등으로 무장한 괴한은 클럽 앞을 지키던 경찰관과 교전한 후 클럽 안으로 들어가 클럽 안에 있던 사람들을 인질로 붙잡고 3시간 가량 경찰과 대치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당시 클럽 안은 주말 밤을 즐기던 100여 명의 남녀로 가득 차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클럽 안에 있던 인원이 약 300명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경찰은 오전 5시께 특수기동대(SWAT)를 투입해 폭발물과 장갑차로 클럽 벽을 뚫고 클럽에 진입한 후 인질 30명가량을 구출했다.

용의자는 총격전 끝에 사살됐다.

경찰은 "특수기동대의 인질구출 작전이 없었다면 희생자 규모가 더 컸을 것"이라며 "용의자들이 사상자들에 총격을 가한 것이 사건 초기였는지, 아니면 교전 과정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용의자의 신원은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인 오마르 마틴(29)으로 확인됐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민 온 부모 사이에서 1986년 뉴욕에서 출생한 용의자는 사건발생 장소에서 두시간가량 떨어진 플로리다 주 포트 세인트 루시에서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결혼한 그는 특별한 전과기록이 없었으나 연방수사국(FBI)으로부터 IS 동조자로 의심받아 수사선상에 올라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FBI와 플로리다 주 경찰은 일단 이번 사건을 국제적 조직이 개입하지 않은 채 용의자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총기난사를 가한 '국내 테러 행위'로 규정지었으나 용의자가 순수하게 단독으로 범행을 저지른 '자생적 테러'인지, 아니면 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연계돼있는지는 분명치 않은 상태이다.

수사당국은 용의자가 평소 IS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여온데다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해온 점에 주목, IS와의 연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진행중이다.

FBI 특수조사팀장인 론 호퍼는 "우리는 용의자가 지하드(이슬람 성전) 사상에 경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며 "모든 각도에서 범행 동기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으며, 올랜도 경찰청장인 존 미나는 기자회견에서 "잘 조직되고 준비된 범행으로 보인다"며 "용의자는 공격형 무기와 소총을 들고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용의자는 총격 직전 911에 전화해 자신이 IS에 충성을 맹세했다고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 밝혔다고 미국 언론이 전했다.

용의자는 전화통화에서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사건을 언급했다고 이 당국자들은 전했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사건 공범의 한명인 타메를란 차르나예프도 용의자와 마찬가지로 FBI의 테러 용의선상에 올라있었다.

미국의 한 당국자는 이날 국토안보부가 행정부에 회람한 보고서를 거론하며 "용의자가 IS에 충성서약을 했고 나이트클럽에서 다른 언어로 기도하는 것을 들었다는 지역 수사당국의 보고내용이 언급돼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샌버너디노 총격사건의 주범인 사이드 파룩의 부인인 타시핀 말리크(27)도 범행전에 페이스북에서 IS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 충성을 서약한 바 있다.

IS와 연계된 매체인 아마크통신은 이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1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올랜도 게이 나이트클럽 공격은 IS 전사가 저지른 것"이라고만 짤막하게 밝혔다.

그러나 용의자가 IS와 직접 연계되거나 IS가 범행을 사전 인지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WP 등 미국 언론이 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사건을 "테러 행위이자 증오 행위"라고 규정한 뒤 "미국인으로서 우리는 슬픔과 분노, 우리 국민을 지키자는 결의로 함께 뭉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사건의 희생자들과 가족에게 애도를 표하는 한편 애도의 뜻으로 정부 건물에 조기를 게양할 것을 지시했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대(對)테러 담당 보좌관인 리사 모나코로부터 사건보고를 받았으며 연방 정부에 수사를 협조하라고 지시했다.

총격당시의 긴박한 상황은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도 속속 전해졌다.

무장한 범인이 인질을 잡고 있다는 글이 속속 올라왔으며, 부상자들이 도로에서 치료받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올라왔다.

한 남성은 당시 클럽 안에 있었다며 안에서 총이 발사됐고 다른 사람들이 "사람이 죽었다"고 비명을 질렀다고 말했다.

해당 클럽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모두 밖으로 나가 도망쳐라"라는 글을 올렸으며 올랜도 경찰도 트위터를 통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확인하면서 주민들에게는 이 지역에 접근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올랜도에서는 지난 10일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의 가수 크리스티나 그리미(22)가 사인회 도중 한 남성의 총격에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케빈 제임스 로이블이라는 이름의 26세 남성이 그리미를 총으로 쏘고 나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범행 동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올랜도 경찰은 이번 나이트클럽 사건은 그리미 사건과는 연관성이 있다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워싱턴·서울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김지연 한미희 기자 rhd@yna.co.kr,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