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정후 법원·행정당국·경찰 조치 취하고 시민들 '각성'
'혐한' 숨긴 채 시위 신청시 허용할 수 밖에 없는 한계
"지역 특성 감안한 조례만들고 대책법 보완해야"

3일 발효된 일본 혐한시위대책법(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향한 대응 추진에 관한 법·이하 대책법)의 효과와 한계가 동시에 확인되고 있다.

5일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 시, 도쿄 시부야(澁谷) 등에서 벌어진 혐한 단체의 시위는 터무니없는 혐한 발언을 하는 이들이 마음놓고 도시 중심가를 활보했던 법 제정 이전의 상황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법 제정으로 혐한시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가와사키에서는 시민들이 혐한 세력을 포위, 시위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시부야에서는 시위가 벌어지긴 했지만 주최측이 '혐오발언으로 간주될 수 있는 발언은 삼가라'고 참가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그러나 혐한시위대책법으로 시위 자체를 원천 봉쇄하기는 어려워 테마를 '일본 정화(淨化)' 등으로 교묘하게 비틀어서 진행하는 사실상의 혐한시위를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행정당국·법원·경찰, 법 제정후 기민한 움직임 = 대책법 제정후 일본의 행정·사법·경찰 당국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가와사키 시 당국은 지난달 30일 혐한시위 단체가 시위 활동을 위해 신청한 시내 공원사용을 불허했고, 요코하마(橫浜) 지방재판소 가와사키 지부는 2일 혐한시위 금지를 요구하며 가와사키 시내 사회복지법인이 제기한 가처분 소송에서 법인 사무실 반경 500m 안에서의 시위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또 일본 경찰청은 지난 3일 혐한시위로 대표되는 헤이트스피치(특정 민족, 국민 등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는 행위) 시위에 대해 현행법을 적용해 엄단하겠다는 방침을 일선에 통보했다.

이런 조치들은 혐한시위와 같은 차별조장 언동을 '용인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혐한시위대책법을 감안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비록 법에 처벌조항은 없지만 법이 혐한시위와 같은 행동을 용인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 일본 사회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는 양상이다.

혐한시위 세력의 행동을 제어하려해도 '표현의 자유'라는 주장에 맞설 마땅한 법률이 없었던 때와는 분명 달라진 상황인 셈이다.

더불어 법 제정의 계몽효과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5일 가와사키 시위에 수십 명의 혐한 인사들이 모였지만 그 규모를 크게 뛰어넘는 수백 명의 혐한 반대 시위대가 혐한 시위를 포기시킨 상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그간 각종 시위현장에서 '카운터 시위대'가 혐한시위대에 맞서왔지만 언론은 이를 두 세력간의 '소동'으로 묘사해왔다.

법 제정을 통해 혐한시위는 나쁜 것이라는 점을 일본 국민이 인지한 이상 카운터 시위는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 시위 자체는 막을 수 없어 = 그러나 보수단체 시위의 탈을 쓴 사실상의 혐한시위를 원천 봉쇄할 수 없는 한계도 드러났다.

가나가와(神奈川)현 경찰 당국은 가와사키 시위를 주최한 남성이 5일의 시위를 위해 신청한 도로사용을 허가했다.

가나가와현 공안 조례가 "공공의 안녕을 유지하는 데 직접 위험을 미칠 것으로 분명히 인정되는 경우 외에는 허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어 신청을 불허한 사례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덕에 가와사키 시위 주최측은 애초 예정한 장소를 바꿔 시위를 추진할 수 있었다.

결국 시민들의 저지로 무산되긴 했지만 대놓고 '혐한시위를 하겠다'고 하지 않는 한 혐한세력도 여전히 시위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또 혐한시위대책법에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를 모욕하는 혐한 시위에서 혐한 구호가 나오더라도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 보인다.

결국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혐한세력이 공공 장소에서 시위를 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례를 제정하는 등 대책법의 구멍을 메우는 후속 조치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오키나와(沖繩) 대학의 고바야시 다케시 객원교수(헌법 전공)는 "지역의 특성과 실정을 고려한 조례를 가와사키 시가 만들면 전국에 퍼질 것이고, 그것은 미성숙한 대책법을 개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 혐한시위대책법 어떤 내용 담았나 = 지난달 24일 일본 국회를 통과해 지난 3일 발효한 혐한시위대책법은 '적법하게 일본에 거주하는 일본 이외의 출신자와 후손'을 대상으로 '차별 의식을 조장할 목적으로 생명과 신체 등에 위해를 가하는 뜻을 알리거나 현저히 모욕하는 것'을 '차별적 언동'으로 정의하고 '용인하지 않음을 선언한다'고 명기했다.

또 중앙 정부에는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위한 시책을 실시하고, 지방 공공 단체에 필요한 조언 및 조치를 취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했다.

더불어 지방자치단체에는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위한 대책을 국가와의 적절한 역할 분담을 바탕으로 지역 실정에 맞게 강구하도록 노력하라고 주문했다.

또 중앙정부는 상담 체제의 정비, 교육의 충실화 및 계몽 활동 등을 실시하고,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와의 적절한 역할 분담을 바탕으로 해당 지역의 실정에 맞춰 교육 및 계몽 조치를 실시토록 했다.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