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北정권 떨게한 'BDA제재 효과' 재현 여부는 불투명

미국 재무부가 1일(현지시간) 북한을 최초로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한 것은 북한정권을 떨게 했던 2005년의 '방코 델타 아시아'(BDA)식 금융제재를 재현해, 김정은 정권의 돈줄을 전방위로 차단하겠다는 목표가 깔려 있다.

제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을 멈추지 않는 북한 정권으로 자금이 들어가는 루트를 막아 '명줄'을 더욱 옥죄겠다는 구체적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북한 금융기관은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되는 동시에 기본적으로 미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전면 금지되는 것은 물론, 중국을 비롯한 제3국의 금융기관과의 거래도 상당한 제약을 받게된다.

우선 북한에 대한 미 재무부의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 지정은 지난 2월18일 발표된 역대 최강의 대북제재법안(H.R 757)의 후속조치다.

미 정부는 이 법을 시행하면서 180일 이내에 애국법 311조에 따라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할 필요를 검토하게 했다.

그러자 재무부는 시한을 크게 당긴 104일 만인 이날 전격으로 조치를 취했다.

재무부는 이날 성명에서 "재무부 금융범죄단속반(FinCEN)은 미국 금융기관이 북한의 금융기관과의 계좌를 개설 또는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북한 금융기관을 위한 거래에서 미국 금융기관의 계좌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음으로써 북한을 국제 금융시스템에서 더욱 고립되도록 하는 특별한 규정을 공고했다"고 밝혔다.

즉 초유의 이번 조치를 통해 미국과 북한 금융기관 간 기존의 거래는 물론 향후 거래를 완전히 봉쇄하는 것은 물론 북한 금융기관과 제3자의 거래에 미국 금융기관의 계좌가 이용되는 것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미 재무부는 조사를 통해 제3국의 금융기관이 북한과의 실명 또는 차명 계좌를 유지하고 있음이 드러날 경우 해당 금융기관과의 거래도 중단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치는 사실상 북한의 후원국이자 금융거래가 가장 활발한 중국의 금융기관을 곧바로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금융기관으로서는 북한과의 거래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금융시스템에 남을 것인가를 택일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 재무부가 이날 국제사회에도 북한과의 금융관계를 끊는 유사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촉구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를 염두에 둔 언급으로 보인다.

미 정부는 이날 조치를 통해 2005년 9월 BDA식 금융제재를 능가하는 훨씬 폭넓고 강력한 타격을 북한에 가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즉 당시 북한의 거래은행이던 마카오 BDA에 김정일의 통치자금 2천500만 달러 가량이 동결되면서 북한 정권에 가했던 타격을 재현하겟다는 것이다.

실제 미 당국은 탈북자 등의 면담을 통해 BDA 제재 당시 북한이 회전계 등 미사일 부품을 구입하지 못하거나 김정일이 측근들에게 돈을 배분하지 못하는 등 통치기반이 약화했던 상황을 확인했고, 이번 조치를 통해 이러한 상황을 다시 조성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제재법안을 주도했던 에드 로이스(공화·캘리포니아) 하원 외교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와 간담회 등에서 "북한 핵실험 및 미사일 개발 등을 막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북한 정권의 돈줄 차단"이라며 "북한이 현금을 손대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힌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외견상 광범위한 강력해보이는 이번 조치가 과거 BDA 제재 만큼의 효과를 낼지는 두고 볼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 당국은 제3국의 금융기관이 미국과 금융거래를 못 하도록 함으로써 일종의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효과가 발생해, 북한이 국제 금융시스템에서 완전히 고립되고 결국 정권의 존립기반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BDA 제재 이후 대부분의 계좌를 중국에 숨겨놓고 금융결제도 소액으로 쪼개는 방식으로 감시망을 피할 수 있는 다양한 조치를 취해둔 것으로 알려져 실제 얼마나 타격을 받을지 지금으로는 알 수 없다.

또 이번 조치로 인해 중국 금융기관이 실제 보복을 받게되면 미국과 중국 관계가 더욱 험악해질 수 있는 점도 큰 변수로 꼽힌다.

2005년의 제재는 미 당국이 마카오의 작은 은행인 BDA가 북한 위조지폐의 제작과 유통에 이용된 혐의를 포착하고 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하자 미국과의 거래 차단을 우려한 각 금융기관이 스스로 거래를 끊거나 예금주들이 앞다퉈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런'이 발생하면서 역대 최강의 대북 제재의 효과를 발휘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신지홍 특파원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