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읽기 쉬운것 장점"…美외교원 "2천200시간 걸리는 어려운 언어"

"세종대왕도 맨부커상 상금 일부를 마땅히 가져갈 만하다."

소설가 한강(46)이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인 영국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영국 방송 BBC는 17일(현지시간) 한강과 '채식주의자'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의 공동 수상을 계기로 '채식주의자: 한국어를 배우고 상을 타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한국어가 어떤 언어인지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BBC는 먼저 한글이 어떻게 탄생한 문자인지부터 상세히 소개했다.

백성을 깨우치고자 한 세종대왕 덕에 중국 문자를 빌려다 썼던 한국어가 쉽게 읽고 쓸 도구를 얻게 됐다는 것이다.

방송은 "슬기로운 자는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칠 것이고 어리석은 자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문구를 소개하면서 한국어가 어느 정도로 배우기 쉽거나 어려운 언어인지 논의를 시작했다.

BBC는 한글을 익히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언어보다 본질적으로 배우기 쉬운 언어는 없다는 언어학자들의 통상적인 견해를 소개했다.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는 "한국어 배우기의 어려운 정도는 학습자가 어떤 언어를 이미 알고 있느냐에 달렸다"면서 "중국어와 한국어가 많은 어휘를 공유하면서도 어순과 문법구조는 달라 중국인은 영어 사용자와 비교해 한국어 문법을 배우는 것은 똑같이 어렵지만 한국어 단어는 훨씬 쉽게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의 교육기관인 외교원(FSI)은 한국어를 배우기에 '대단히 어려운 언어'로 분류해 놓았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가 영어와 비슷한 언어인 덴마크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을 '일반적·전문적으로 능숙한' 수준으로 배울 때는 575∼600시간(23∼24주) 수업이 필요하지만, 한국어의 경우에는 2천200시간(88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BBC는 주저할 필요는 없다면서 10개 이상 언어를 익힌 호주 번역가 도너번 나이절이 한국에서 지냈을 때 3∼4개월 만에 꽤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었고 8개월 만에는 편안하게 유창한 수준으로 말할 수 있었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영어에는 '레스터'(Leicester), '허마이어니'(Hermione) 같은 이름이나 '래프터'(laughter:웃음)와 '슬로터'(slaughter:도살), '테이크 어 바우'(take a bow:절하다)와 '타이 어 보우'(tie a bow:매듭을 만들다) 등 바뀌는 발음이 많다.

그러나 한국어는 글자를 읽는 방식이 변형 없이 명쾌하며 많은 명사에 '하다'를 붙이면 동사나 형용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쉽다고 나이절은 말했다.

물론 번역은 언어를 배우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창의적인 과정이며, 스미스가 '채식주의자' 번역으로 상을 공동 수상한 것도 그 때문이다.

심사위원단은 이 소설이 "영어로 완전히 제대로 된 목소리를 갖췄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한글과 영문으로 모두 이 책을 읽은 한 한국인 독자는 번역본이 원작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스미스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리듬'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면서 "훌륭한 한국 문학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면 그 번역은 영문학으로도 훌륭한 작품이어야 한다"며 "방해만 될 뿐이라면 통사론(문장의 구조나 구성을 연구하는 방법)을 두고 씨름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BBC는 스미스의 이런 말을 전하면서 "번역가는 상을 받을 만하다. 세종대왕도 그렇다"고 평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