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인 2011년 5월 15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수천 명의 젊은이가 모여들었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로 스페인 정부가 긴축 정책을 시행하면서 실업자가 속출하고 집을 잃는 시민도 늘어나자 '진정한 민주주의를 하자'면서 거리로 나선 것이다.

'분노한 사람들'(Indignados)이란 이름을 얻게 된 이들은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텐트를 치고 긴축 정책과 빈부 격차에 항의하며 고실업률 해소, 부패 척결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당시 스페인의 실업률은 21%에 달했으며 특히 25세 이하 청년 실업률은 45%에 육박해 젊은이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첫 시위가 벌어진 지 한 달 뒤 마드리드에는 시위대 20만 명이 운집하고 텐트촌이 형성됐다.

◇'분노하라 시위' '월가 점령' 시위 등 미국, 유럽으로 퍼져나가
시위가 처음 시작됐을 때만 하더라도 이들은 자신들의 운동이 어떤 파문을 몰고 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한 달 동안 지속한 '분노하라 시위'에 각성한 세계 각국 시민은 속속 거리로 나오고 광장을 점령했다.

그리스 아테네에 노숙캠프가 만들어졌고 이어 영국 런던에서는 청년 폭동이 벌어졌다.

9월에는 텔아비브 등 이스라엘 여러 도시에서 4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고물가와 주택 부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같은 달 미국 뉴욕 맨해튼의 주코티 공원에서는 금융자본의 탐욕과 극심한 빈부 격차에 항의하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제목의 무기한 노숙 시위가 물꼬를 텄다.

당시 주코티 공원의 월가 점령 시위대가 "우리 99%는 가진 게 없다, 나머지 1%가 다 차지했다"고 외친 이래 극심한 불평등을 상징하는 '1대 99'의 구호는 대중을 사로잡았다.

소셜미디어로 무장한 점령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했고 이어 캐나다, 유럽을 돌아 아시아와 호주까지 전파됐다.

그해 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정부와 그 주변 세력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커졌다"고 진단하면서, '시위대'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스페인 정치·사회 변혁 초래…30여 년 양당 체제 붕괴
'분노하라 시위'는 스페인 정치·사회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경제 상황 악화와 '분노하라 시위'로 그해 11월 치러진 총선거에서 중도 좌파 사회당은 중도 우파 국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

국민당도 집권 후에는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전임 사회당 정부가 시작한 재정 지출 축소와 세금 인상 등의 긴축 정책을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이후 경제는 차츰 정상 궤도에 올랐으나 긴축 정책으로 불평등은 심화했으며 정치권에서 잇달아 터지는 부정부패 사건에 국민은 다시 한 번 분노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4년 1월 '분노하라 시위'에 뿌리를 둔 좌파 정당 포데모스가 만들어졌다.

포데모스는 창당 2년도 안 돼 작년 12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3위에 오르면서 30여 년 넘게 이어진 국민당-사회당 양당 체제를 무너뜨렸다.

말총머리를 한 30대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데모스 대표는 스페인의 은행 구제금융 채무 경감을 위한 국제채권단과 재협상을 주장해 왔으며 반부패와 긴축반대를 내세우면서 포데모스의 인기를 이끌었다.

작년 총선에서 뽑힌 350명의 하원 의원 가운데 211명이 초선일 정도로 급격하게 정치권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앞서 작년 5월 지방선거에서도 포데모스가 소속된 좌파연합의 후보가 수도 마드리드와 제2 도시 바르셀로나의 시장으로 선출되면서 중앙과 지방정치에 '분노하라 시위' 세력이 퍼졌다.

작년 12월 총선 이후 정당들이 연립 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스페인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다음 달 재총선을 치르게 됐다.

중도 우파 국민당은 여전히 정부를 이끌고 있으며 재총선에서도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분노하라 시위'가 구체적인 결실을 볼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하지만 지난 3월 이후 이웃 나라인 프랑스에서 '친기업' 노동법 개혁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이 파리 시내 광장을 차지하고 '밤샘 시위'를 벌이는 등 '분노한 사람들'이 촉발한 저항 운동 정신은 지속하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sungjin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