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역사적 관점 부족 우려" 내세워 세계유산 등재결정 불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는 27일 2차대전 당시 피폭지인 일본 히로시마(廣島)를 찾을 예정인 상황에서 20년 전 미국이 히로시마 '원폭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반대했던 사실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할 것으로 알려진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인접한 원폭돔은 일본 원폭 피해의 상징과 같은 건물이다.

히로시마 물산진열관으로 사용되다 1945년 원자폭탄 투하로 돔 부분 골조와 외벽 일부만 남아 있다.

일본은 핵무기 폐기와 평화에 대한 염원의 상징으로 이 건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고, 1996년 12월 제21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결정됐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함께 원폭돔의 세계유산 등재에 이견을 표시하고, 등재 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dissociate)는 뜻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유네스코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당시 발언문에 따르면 미국 대표단은 "우방국이지만 등재를 지지할 수 없다"며 "역사적 관점의 부족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미국 대표단은 "2차대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미국이 원자폭탄을 사용한 것에 앞서 일어난 사건들은 히로시마의 비극을 이해하는 핵심"이라며 "1945년까지의 기간에 대한 어떠한 검토도 적절한 역사적 맥락 속에 놓여야 한다"고도 했다.

원폭 피해의 참상을 부각시킨 원폭돔 세계유산 등재는 원자폭탄을 사용하기까지의 역사적 맥락을 탈색시킬 수 있다는 미국 측의 우려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미국은 국내외에서 우려하는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 가능성과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는 것이 우리 정부 내 평가다.

외교부 당국자는 11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 측은 2차대전 말 원폭을 사용한 것과 관련해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하면서 역사에 대한 공개적 인정이 과거를 이해하는데 긴요하다는 인식을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0년 전 원폭돔 세계유산 등재에 역사 문제를 들어 공개적으로 이견을 밝혔던 것에 비하면, 미국 현직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성사는 이 문제를 둘러싼 미·일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실현하는 핵심 안보 파트너로서 역내에서 점차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요구를 더욱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됐으리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이번 방문이 미일간 전면적인 '역사 화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12일 "(히로시마 방문은) '핵 없는 세상'이라는 오바마 대통령 개인의 의제에 따른 효용이 더 크다"며 "역사 화해 프레임은 일본의 '짝사랑'"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kimhyo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