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완주로 '정책 길들이기'…"본선도 흔들 가능성"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승리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러나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은 다음 달까지 남은 경선을 완주하겠다는 계획을 견지하고 있다.

샌더스 의원의 이 같은 입장은 단순한 패자의 오기로 치부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그의 레이스 참여 자체가 민주당 대권후보가 될 클린턴 전 장관의 정책변화를 유도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7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샌더스 의원이 클린턴 전 장관의 정책에 미친 영향은 벌써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자세다.

샌더스 의원은 클린턴 전 장관이 FTA를 열렬히 지지해 고용불안을 부르고 서민의 삶을 황폐화했다고 공세를 높이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의 태도는 올해 대선 경선을 거치면서 극적으로 변했다.

그는 세계 최대의 다자간 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국무장관 시절 주도했으며 2012년 경선 때는 이를 "국제통상의 황금률"이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클린턴 전 장관은 이번 경선 때 샌더스 의원의 비판과 더불어 중산층으로부터 의혹의 눈초리를 받자 기존 신념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협상 결과를 보자 반대하게 됐다"고 입장을 바꿨다.

클린턴 전 장관은 사회보장연금에 대한 소신도 꺾었다.

재원부족 우려에 연금을 깎겠다는 과거 입장을 번복하고 샌더스처럼 고소득 근로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클린턴 전 장관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샌더스 의원의 입장에도 부분적인 수긍의사를 드러냈다.

최저시급을 15달러로 올리는 법안이 올라오면 굳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최근 밝혔다.

샌더스 의원은 지난 3일 인디애나 경선에서 클린턴 전 장관을 꺾으며 정책변화에 대한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 의원은 연방 정부가 제공하는 보편적인 의료보험, 국공립대 등록금 폐지 등 일부에서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하는 정책까지 내놓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보편의료, 무상교육과 관련한 샌더스 의원의 제안은 거부하고 있다.

샌더스 의원이 클린턴 전 장관을 압박하는 동력은 진보적 당원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여기는 민주당원은 2000년 27%이던 것이 작년에 42%까지 치솟았다.

반면 자신이 중도로 여기는 민주당원은 같은 기간 45%에서 38%로 떨어져 최근 진보적 당원에 최다 자리를 내줬다.

정부가 경제에 단호하게 개입하기를 원하는 좌파 성향을 지닌 민주당원도 1994년 50%에서 작년 65%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학자 딘 베이커는 "클린턴 전 장관이 아무 반대도 없이 독주하거나 (선출 가능성이 없는) 미미한 후보였다면 진보적인 정책이슈를 그냥 무시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WP는 대담한 의제로 클린턴 전 장관의 좌클릭을 압박한 샌더스 의원이 경선에서 패배하더라도 오는 11월 대선에서도 크게 느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NYT는 클린턴 전 장관이 본선에서 샌더스 의원의 젊은이, 정보기술 조직을 활용하려면 여전히 샌더스 의원의 정책을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경선에서 샌더스 의원을 지지하는 온라인 네트워크는 메시지 홍보뿐만 아니라 모금, 더 많은 참여의 통로로 효과를 내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클린턴 전 장관으로서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와의 한판대결에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NYT는 "샌더스의 온라인 보병이 본선을 흔들 수 있다"면서도 이는 클린턴 전 장관이 샌더스 의원을 정책적으로 수용할지에 달렸다고 보도했다.

'민주주의 개인 미디어'의 창립자인 미카 시프리는 "샌더스의 조직은 군단이 아니라 꿀벌떼"라며 "작년에 샌더스가 기회를 잡았을 때 운집한 이들 꿀벌은 경선이 끝나면 샌더스뿐만 아니라 누구의 지휘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프리는 "클린턴 전 장관으로서 꿀(정책)로 이들 일부를 얻을 수 있겠지만 이들을 지휘하려고 한다면 쏘이고 말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