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도전만에 고지 등정…어릴적 문제아에서 정치적 이단아로
전후질서-동맹틀 뿌리째 흔드는 극단적 공약에 세계 우방들 촉각
경선승리 동력 인종-종교-여성차별 발언이 본선의 걸림돌 될수도

억만장자 부동산 재벌, 정치인, 방송인, 작가, 엔터테이너, 아웃사이더…
미국 부동산 재벌 도널드 존 트럼프(Donald John Trump) 앞에 붙은 수식어다.

그런 트럼프에게 최소한 공화당 대선후보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추가되게 됐다.

트럼프는 사실상 경선 '마지막 승부처'로 여겨졌던 3일(현지시간) 인디애나 주(州) 경선에서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을 꺾고 압승하면서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다.

크루즈 의원은 패배 직후 경선 포기를 선언했고, 이에 라인스 프리버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은 트위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사실상(presumptive) 공화당의 대선 후보 지명자가 될 것"이라며 그의 후보 지명을 기정사실화했다.

이에 따라 오는 7월 클리블랜드 전당대회도 트럼프 대선 후보 추대 형식으로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 어릴 적부터 '문제아'…부친 부동산사업 승계해 트럼프 제국 일궈
트럼프는 1946년 6월14일 뉴욕 퀸스에서 독일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부동산 중견 사업가였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와 스코틀랜드 태생인 어머니 메리 애니 사이에서 3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형 프레드 주니어는 1981년 43세의 나이에 일찌감치 세상을 떠났다.

트럼프는 어릴 적부터 문제아로 통했다.

퀸스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온 트럼프는 하루가 멀다고 사고를 쳐 부모가 그를 강제로 '뉴욕군사학교'(New York Military Academy)'에 입학시켰다.

뉴욕군사학교는 1889년에 세워진 고등학교 과정의 사립 기숙학교다.

앞서 다니던 학교에서 선생님을 때려 눈 주위를 멍들게 한 적이 있을 정도로 기질이 거칠었던 트럼프는 군사학교 졸업 후 1964년 뉴욕에 있는 포덤대학에 입학해 2년을 다닌 후 미국 아이비리그에 속한 명문대학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로 편입해 경제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직후 아버지와 함께 부동산 사업에 손을 대면서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 '트럼프'를 내건 호텔과 골프장, 카지노 등을 운영하는 트럼프그룹(The Trump Organization)을 일궜다.

한국에서는 대우건설이 1990년대 후반 트럼프와 공동으로 뉴욕 유엔본부 근처에 맨해튼 트럼프 월드 타워를 건설한 인연으로 '트럼프월드' 이름이 들어간 주상복합을 건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버지로부터 100만 달러(현재가치 680만 달러·약 77억3천만 원)를 빌려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는 트럼프는 1971년 아버지에게서 경영권을 승계한 뒤 사명을 트럼프그룹으로 바꿨다.

사업 과정에서 뉴저지 주 애틀랜틱 시티에 타지마할 카지노를 세웠다가 도산하는 등 굴곡도 있었다.

트럼프가 부동산 사업가로서의 성공과 별개로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 NBC 방송의 서바이벌 리얼리티 TV쇼 '어프렌티스'(견습생)를 진행하면서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어프렌티스는 연봉 25만 달러(약 2억8천만 원)의 트럼프 계열사 인턴십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 과정을 그린 일종의 직업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트럼프는 여기에서 지금도 유행하는 '너는 해고야'(You're fired)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1996년 미스 유니버스 조직회를 인수해 매년 미스 유니버스, 미스 USA 대회 등을 열어왔으며 1988년과 1989년 레슬매니아 대회를 잇따라 후원하면서 미국프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와도 인연을 맺었다.

엔터테이너 기질이 강한 트럼프는 영화 '나홀로 집에2'의 카메오로 출연했고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트럼프의 종교는 개신교이며, 재산은 본인이 87억 달러(약 9조9천억 원)라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3분의 1 수준인 30억 달러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첫째 부인 이반나 트럼프, 둘째 부인 말라 메이플스와 각각 이혼한 뒤 2005년 슬로베니아 출신 모델 멜라니아 트럼프와 세 번째 결혼했다.

현재 장남 트럼프 주니어, 장녀 이반카 트럼프와 차남 에릭 트럼프 등 5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매리엔 트럼프 배리(78) 미 연방 제3항소법원 판사가 친누나다.

◇ 잦은 당적변경 후 공화당 경선 출마…막말-기행으로 인기몰이
트럼프는 사업가답게 필요에 따라 당적을 여러 번 옮겼다.

공화당(1987∼1999년)에서 개혁당(1999∼2001년), 민주당(2001∼2009년)을 거쳐 2009년 공화당으로 돌아왔으나 이후 탈당해 무소속이 됐다가 2012년 다시 공화당에 정착했다.

갈지자 행보를 보인 만큼 낙태 등 현안에 대해서도 자주 입장을 바꿨다.

특히 본선 상대로 유력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부부 등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후원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경선과정에서 정체성 공방에도 휘말렸다.

트럼프는 2000년 개혁당 경선에 출마했으나 중도에 포기했다.

이후 2004년, 2008년, 2012년 대선 때도 대선 후보 참여를 저울질했으나,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나서지 않았다.

트럼프는 지난해 6월16일 대선 출마 선언 당시 지지율이 한 자릿수 초반대로 미미해 누구도 그의 완주를 믿지 않았다.

좌충우돌 엔터테이너의 들러리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멕시코 불법이민자들을 마약범이나 강간범에 비유하고 이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인종차별적 막말에도 역풍이 불기는커녕 지지율이 급상승해 단번에 2위로 뛰어올랐고 그해 7월부터 지지율 1위 자리를 지켰다.

또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같은 당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의원을 향해 "전쟁포로여서 영웅이 아니다"고 조롱하는가 하면 또 폭스뉴스의 여성 앵커 메긴 켈리를 '빔보'(bimbo: 섹시한 외모에 머리 빈 여자를 폄하하는 비속어)라고 부르고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CNN 등 주류 언론과 '전쟁'을 벌이면서도 그의 지지율은 굳건했다.

특히 멕시코 이민자 차단을 위한 장벽 건설, 테러 용의자 물고문, 모든 무슬림 입국금지,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주는 출생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 폐지,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을 비롯한 모든 무역협정 재협상, 동맹과의 방위비 재협상및 미군철수 시사, 한·일 핵무장 용인 등 공화당과 거꾸로 가는 공약에도 경선에서 연이어 승리하는 괴력을 보였다.

트럼프는 2월 1일 첫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 패배, 3월 말 '낙태여성 처벌' 발언 역풍, 주류 진영의 노골적인 '반(反)트럼프' 저지 선언 등으로 몇 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결국 대선후보 고지 등정을 목전에 뒀다.

인종, 종교, 여성차별 등 극단적이면서도 분열적 발언에도 트럼프가 인기를 누리는 것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노에 더해 공화당의 핵심 지지기반인 백인 중산층의 불안감과 박탈감을 자극한 결과로 보인다.

히스패닉의 급성장과 백인 인구의 감소세 속에서 점점 변방으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백인 중산층과 저소득 노동자 계층의 위기감이 트럼프 현상으로 나타났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치적 결벽증'(Political Correctness·인종-성별-종교 등을 이유로 공격적 언어나 행동을 극도로 꺼리는 것)을 거부한 채 기성 정치권과 언론을 몰아세우면서 자신의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막말이 이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는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의 막말과 기행은 치밀하게 계산된 선거전략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는 1987년 저서 '협상의 기술'을 펴냈을 정도로 자칭 '협상의 달인'인 트럼프가 의도적으로 백인 중산층의 가장 큰 불만인 일자리 부족과 이민정책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는 논리다.

실제 이들은 잘못된 무역협정과 이민자 수용확대 정책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역차별을 받는다는 불만을 품고 있다.

트럼프가 최근 "남자였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여성카드'로 클린턴 전 장관을 공격하고 나선 것도 주도면밀한 본선 전략의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클린턴 전 장관의 강점 중 하나인 '첫 여성 대통령' 카드의 김을 미리 빼면서 이슈를 본인 주도의 판으로 바꿔놓으려는 포석이라는 얘기다.

◇막말-기행 등 경선의 강점이 본선에선 걸림돌 될 수도
경선은 그야말로 공화당원들 만을 상대로 하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본선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경선 승리의 동력이 된 히스패닉과 무슬림, 여성에 대한 차별 발언이 본선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최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백인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비중이 높은 히스패닉은 2014년 기준으로 5천541만 명(전체 인구의 17.4%)에 달해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트를 쥘 가능성이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방송의 지난달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56%로 나온 것은 미국민 전체적으로는 트럼프의 분열적 언행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동맹 등 세계 각국이 트럼프의 대통령 가능성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같은 연장선이다.

주류 진영의 반감을 어떻게 누그러뜨리고 당을 통합해 나갈지, 또 거칠기가 그지없는 공약을 어떻게 다듬어나갈지도 주요 과제다.

(워싱턴연합뉴스) 심인성 특파원 sim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