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불참에 사우디 변심…이란 존재감만 부각

비잔 남다르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이 유럽연합(EU) 회원국들에 일일 7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이란 현지 매체들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잔가네 장관은 16일 테헤란을 방문한 미구엘 아리아스 카네테 에너지담당 EU 집행위원과 이같이 합의했다.

공교롭게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18개국은 카타르에 모여 산유량 동결을 놓고 장시간 격론을 벌였으나 결국 합의가 결렬됐다.

잔가네 장관은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을 주축으로 한 주요 산유국의 석유·에너지 장관이 산유량 동결을 모색하고 있을 때 이란의 석유장관은 오히려 원유 수출을 늘리는 계약에 서명한 것이다.

잔가네 장관은 "이란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유럽에 더 많이 수출할 수 있도록 양측이 상시로 협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EU가 2012년 이란의 원유, 가스 수출에 제재를 가하기 이전 이란은 유럽에 일일 6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한 점을 고려하면 이란은 이날 계약으로 제재 전 수준으로 원유 수출을 회복하는 길을 연 것이다.

올해 1월 제재 해제 이후 이란은 이미 프랑스 토탈, 스페인 셉사, 러시아 루크오일에 원유 수출을 재개했다.

이번 산유국 회의가 합의에 실패한 원인은 러시아와 함께 회의 개최를 주도한 사우디가 이란의 동결 동참을 조건으로 내건 탓이다.

제재 해제 이후 이란은 석 달만에 원유 수출량을 거의 배로 늘리면서 공격적으로 국제 원유시장에 복귀했다.

사우디는 1월 이란과 외교관계를 단절한 데 이어 이란이 지원하는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이유로 레바논에 군사 지원을 중단하는 등 제재 해제로 탄력받은 이란의 확장을 극도로 경계해왔다.

산유량 동결에 앞장섰던 사우디가 가능성이 희박했던 이란의 동참을 선결 조건으로 굳이 내건 것은 두 나라의 중동 패권 경쟁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산유량 동결 합의가 무산되면서 이란의 존재감만 두드러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사우디가 예상됐던 이란의 불참을 무릅쓰고 정면 돌파함으로써 이란을 압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우디가 마련한 산유량 동결안의 성사 여부가 이란의 손에 달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아울러 OPEC 13개 회원국 중 산유량으로 3위권인 이란이 사우디가 이끄는 OPEC과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이 기구의 '석유 카르텔'도 약화할 공산이 커졌다.

(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