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수록 상황 더 악화…신생아 뇌손상 양상 달라"
백신 '절대' 필요하나 '첫 폭발적 확산' 뒤에나 나올 듯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22일(현지시간) 지카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공중 보건이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거릿 챈 WHO 사무총장은 이날 제네바에서 진행된 언론 브리핑에서 "1년도 안 된 사이에 지카 바이러스의 위상이 가벼운 의학적 관심거리에서 공중보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원인으로 변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챈 사무총장은 지카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환들이 다양하고 당초보다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면서 "더 알면 알수록 상황이 더 악화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백신 개발이 '절대적(imperative)'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하면서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이 지카 바이러스 전염 모기 서식 지역에 살고 있고, 어느 다른 지역으로 어느 만큼 확산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첫 번째 폭발적 확산 파동이 지난 뒤에야 인류가 실제 백신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현재 각국 과학자들과 보건·제약업체들이 백신 개발에 나서고 있으나 일러야 오는 가을 한 두 곳에서 첫 인체 임상시험에 착수할 수 있으며, 실제 효능과 안전성 검증을 마치고 사용할 수 있기까지는 최소 18개월에서 몇 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챈 총장은 아직 '공식적'인 과학적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지카 바이러스로 인한 질환이 더 다양하고 심각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면서 특히 신생아 소두증과 길랭-바레증후군 등의 양상이 기존 알려진 것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안토니 코스테요 WHO 모자보건국장에 따르면, 지카 바이러스와 신생아 소두증 간 관계를 밝힌 기존 연구에선 지카 감염 임신부가 소두증 아기를 낳을 확률은 1% 미만이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시행된 이 연구는 임신 3개월 미만 임신부만 대상으로 삼고 소두증을 머리 둘레가 작은 경우로만 한정해서 조사한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에선 소두증 신생아 출산 비율과 뇌 결손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신생아의 뇌가 크기뿐만 아니라 기능에도 이상이 있을 정도로 손상된 경우가 부지기수이고 청력과 시력 이상도 나타난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지카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브라질 북동부에서 현재까지 6천480건의 소두증 의심사례 중 2천212건에 대한 조사가 완료된 상태다
이 가운데 모친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CT를 통해 신생아의 뇌 손상이 확인된 사례가 863명으로 39%에 이른다.

나머지 의심 사례에서도 이 같은 비율이 그대로 나타난다면 현재까지 접수된 의심 사례 중 무려 신생아 2천500명이 임상적으로 소두증이라고 일컫는 뇌손상으로 판명되는 일이 벌어지는 셈이라고 코스테요 국장은 말했다.

그는 더욱이 의심사례가 갈수록 더 많이 보고되고 있어 이로 인한 보건 의료 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양상이 확인되면 세계는 심각한 공중보건상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WHO는 백신 개발이나 진단 키트 등과는 별도로 모기 박멸 또는 감소가 현재로선 가장 중요한 예방책 중 하나로 보고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모기 서식지역에서 두 가지 작은 실험에 착수했다.

하나는 곤충 몸에만 사는 월바키아 박테리아에 모기를 감염시켜 지카나 뎅기열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유전자 조작으로 생식능력을 없앤 모기를 풀어 모기 개체 수를 줄이는 것이다.

한편, 챈 사무총장은 지카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한 자금이 매우 부족한 것도 심각한 일이라고 밝혔다.

WHO는 지카 바이러스 긴급 대응용으로 회원국들에 5천600만달러를 추가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지금까지 들어온 돈은 범미주보건기구(PAHO)에 전달된 3백만달러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우선 다른 부문 예산을 전용하고 나중에 채우는 것을 검토 중이라며 회원국과 민간단체 등에 기부를 호소했다.

또 질병 양상으로 봐서 각국이 지카 바이러스에 대해 전체 보건의료 시스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발생국가들을 더 장기적으로 도와야 한다면서 향후 자금 소요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현재로선 평가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