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난징 학살도 "통설없다"며 일본 측 조사 결과 병기
무라야마담화 소개하면서 "식민지배·침략 반성·사죄" 삭제
계승한다면서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게…아베 담화와 닮은 꼴

일본은 내년도부터 사용될 고교 교과서를 검정하면서 3·1운동이나 간토(關東)대학살 때의 희생자 수에 관한 설명을 뜯어고쳤다.

검정을 담당한 교과용도서검정조사심의회 측은 '통설이 없다'는 것을 이유를 내세웠지만, 이들 사건의 심각성을 축소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짓쿄(實敎)출판 교재는 3·1운동을 다루면서 "조선총독부는 군대를 동원해서 운동을 엄하게 진압해 7천500명이나 되는 사상자를 냈다"고 애초에 서술했으나 결국 수정해야 했다.

검정에서 '통설적 견해가 없는 것을 명시하지 않아 학생이 오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는 이 부분을 "조선총독부는 군대를 동원해서 운동을 엄하게 진압해 많은 수의 사망자를 냈다"로 바꾸었다.

또 "사망자에 관해서는 '한국독입운동지혈사(박은식)'의 약 7천500명, 조선총독부 조사 약 550명, 조선주류일본군 조사 약 400명 등, 인원수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주석을 달았다.

독립운동을 탄압한 세력의 조사 결과를 복수로 소개해 희생자 수가 한국 측이 파악한 것보다 실제로는 더 적다는 인상을 풍긴 셈이다.

간토대지진 이후 벌어진 조선인 대량 학살에 관해서도 비슷한 수정이 이뤄졌다.

짓쿄출판 교과서는 "군대·경찰이나 자경단이 6천 명 이상의 조선인과 약 700명의 중국인을 학살했다"고 기재했다가 수정했다.

이런 설명은 심의를 거쳐 "매우 많은 조선인과 약 700명의 중국인을 학살했다"는 표현으로 바뀌었으며 학살된 조선인 수에 관해 약 6천600명, 약 2천600명, 약 230명(일본 사법성 조사) 등의 여러 견해가 있다고 주석을 달았다.

난징대학살 관련 기술도 마찬가지로 손질됐다.

짓쿄출판은 '피해자 수가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과 함께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때 수용한 도쿄재판(극동군사 재판) 판결에 난징학살 때 살해된 '일반인과 포로의 전체 수가 20만 명 이상이라는 것이 나타난다'고 자료 형태로 소개했는데 검정을 거치면서 이 부분이 사실상 통째로 삭제됐다.

검정을 통과한 교재는 '피해자 수에 관한 견해는 왜 다르냐'는 질문과 함께 '포로나 민간인을 합해 살해된 총수에 대해서는 약 20만 명, 십수만 명, 수만 명 등의 견해가 있다'고 기술했다.

또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村山) 담화를 소개하며 "식민 지배와 침략에의 반성과 사죄, 애도의 생각을 표명했다"고 기술한 부분을 삭제했다.

이와 달리 일본 정부가 무라야마 담화를 정부 공식 견해로 계승하고 있다는 대목이나 "일본이 침략전쟁이나 식민지 지배를 부정하는 평화국가라는 증거"라는 표현은 그대로 남겼다.

결국 무라야마 담화를 소개했지만, 담화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한 것이다.

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하면서도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뜻을 끝내 직접 표명하지 않은 것을 연상하게 한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