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기업공개(IPO) 개혁을 늦출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정책 방향이 증시안정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되돌아갔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6일 보도했다.

리커창 총리는 지난 주말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정부 공작보고에서 기업공개 등록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아 많은 투자자들이 예상했던 5월보다는 늦은 시점에 시행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1년 전 이맘때 공작 보고에서 올해부터 등록제를 시행할 것을 다짐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정통한 소식통은 이번 공작보고와 관련, "중점이 시장안정 쪽에 있기 때문에 IPO 개혁이 연기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리커창 총리는 2시간 동안 진행된 공작보고에서 증시와 채권시장의 법치주의 수준을 높일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증시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법행위를 계속 단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대목이다.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국무원에 2년 내에 기업공개 제도를 심사제에서 등록제로 바꿀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심사제는 국유기업들의 상장에 우호적이지만 수많은 혁신적인 민간기업들의 자금 조달 기회를 막아 증시의 기능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이와는 달리 등록제는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증권감독위원회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서구의 주식시장처럼 기업과 투자자들에 재량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시장이 주목하는 사안이었다.

등록제는 기업들이 채권 발행을 늘리는 것보다 증시를 통해 더 많은 자본을 조달하도록 유도해 은행들의 압박을 덜어주려는 목적에서 추진된 것이다.

주식의 분산이 중국이 소비 주도형 성장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리커창 총리가 공작보고를 했던 지난해 3월 상하이 증시는 활황장의 문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정부가 관영 언론을 통해 주식 투자를 적극적으로 권장하자 상하이 증시는 6월까지 3개월간 58%나 급등했다.

하지만 증시는 지난해 여름 폭락했고 올해 들어서도 19%의 하락률을 보이는 등 여전히 부진한 모습이다.

정부는 증시관리에 문제가 있었다고 비판을 받던 샤오강 증감위 주석을 지난 2월 결국 경질했다.

정통한 소식통은 샤오강 주석의 경질이 IPO 개혁의 연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그는 "류스위(劉士余) 신임 주석이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만큼 그가 업무를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티크(유사투자자문사)인 챈슨 앤 컴퍼니의 선 멍 부장은 "IPO 개혁 시행의 연기는 이미 취약한 증시에 미칠지 모를 공급 압박 가능성을 당국이 우려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국이 서킷 브레이커 제도 등 앞서 도입한 개혁조치들을 재평가했으며 이를 경솔하고 위험한 조치로 간주하고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상하이 증시에서는 IPO 등록제를 앞두고 신주 공급 물량이 급증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현재 IPO를 신청하고 당국의 승인을 기다리는 기업은 모두 754개사에 이른다.

당국은 지난해 7월 증시 급락으로 서둘러 도입했던 기업공개 일시 중단 조치를 12월에 해제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도입된 서킷 브레이커 제도는 주가 안정보다는 오히려 투매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은 끝에 나흘만에 폐지됐다.

일부 투자자들은 중국 당국이 약속한 금융 자유화가 더딘데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상하이의 한 개인 투자자는 "중국 자본 시장은 후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낡은 관행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책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면 시장은 지금보다 더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js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