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후 두달간 노심용융 판정 기준에 어긋난 주장…"매뉴얼 인식 못했다"
니가타 지사 "은폐 지시자 밝혀라"…도쿄전력, 원인 조사하기로

일본 후쿠시마(福島)제1원전 사고 때 핵연료가 녹아내리지 않았다고 사실과 다른 설명을 고집한 도쿄전력이 거의 5년 만에 문제점을 인정했다.

도쿄전력은 2011년 3월 사고 후 약 2개월 동안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며 노심용융(爐心熔融, 멜트다운)을 부인했는데, 실제로는 이를 판단할 기준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돼 은폐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도쿄전력은 노심(핵연료가 배치돼 핵분열이 벌어지는 원자로 중심부)의 핵연료가 심각하게 녹아내렸음에도 초기에 '노심용융'이 아닌 '노심손상'이라고 설명한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24일 밝혔다.

도쿄전력에 따르면 원전 사고 당시의 매뉴얼에 '노심 손상 비율이 5%를 넘으면 노심용융으로 판정한다'고 기재돼 있었는데 도쿄전력은 이와 달리 노심손상이라고 한동안 설명했다.

사고 4일째인 2011년 3월 14일 시점에 노심용융이라고 판정 가능했는데 기준을 어기면서까지 사실과 다른 설명을 했음을 5년 만에 인정한 것이다.

도쿄전력은 사고 초기 노심이 훼손된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멜트다운이라고 인정하기까지는 약 2개월이 걸렸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사고 발생 5일째인 2011년 3월 15일에 노심 손상 비율이 1호기 70%, 2호기 90%, 3호기 25%라고 잠정치를 발표했다.

이후 같은 해 4월 27일에 이를 각각 55%, 35%, 30%로 정정했으며 '노심용융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설명을 계속했다.

도쿄전력은 사고 발생 2개월여가 지난 5월 15일 '1호기에서 지진 발생 5시간 후인 3월 11일 오후 7시 반에 노심손상이 시작됐고 다음날 아침 일찍 연료 대부분이 압력용기 바닥으로 녹아 떨어졌다'는 분석을 공표해 처음으로 멜트다운을 인정했다.

9일 후인 5월 24일에 2호기와 3호기에서도 연료가 녹아 떨어졌다고 멜트다운 사실을 확인했다.

니가타(新潟)현에 있는 가시와자키카리와(柏崎刈羽) 원전 재가동 문제와 관련해 도쿄전력의 원전 사고 대응을 검증해 온 니가타현 기술위원회가 사고 당시 경위에 관한 설명을 요구한 것을 계기로 이런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도쿄전력은 두 달이나 지나서 멜트다운을 인정한 것에 관해 그간 '노심용융을 판정할 근거가 없었다'고 설명했으나 사실과 다른 주장이었음이 이번에 확인됐다.

도쿄전력 관계자는 노심용융이라고 즉시 판정하지 않은 이유에 관해 "당시에 그런 매뉴얼이 있었다는 것을 사내에서 인식하지 못했으며 의도적인 것은 아니다"고 2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말했다.

하지만, 도쿄전력이 사태의 심각성을 일부러 축소한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즈미다 히로히코(泉田裕彦) 니가타현 지사는 "사고 후 5년간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던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사내에 매뉴얼이 있었고 사고 당시에도 조직적으로 공유됐을 것이다.

멜트다운을 은폐한 배경, 누구의 지시였는지를 밝히면 좋겠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도쿄전력은 노심용융 판정을 조기에 하지 않은 이유 등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