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사진)의 예상이 빗나가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면 기업이 임금 인상과 설비투자에 나서 일본 경기 회복을 이끌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실적 불확실성이 높아진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임금 인상을 주저하는 모습이 확산되고 있다. 신규 발행 10년만기 일본 국채금리는 24일 장중 2주 만에 사상 최저를 경신했고, 엔화가치는 또다시 달러당 111엔대로 치솟았다.
일본 노조까지 "임금인상 자제"…소비 진작 노렸던 구로다 '당혹'
◆대출마진 축소 악영향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일본 대형은행 중 처음으로 3년 만에 기본급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일본은행이 연 0.1%의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함에 따라 대출 마진이 축소되면서 지난해뿐 아니라 2016회계연도까지 실적을 가늠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날 장중 신규 발행 10년만기 국채금리는 전날보다 0.050%포인트 하락한 연 -0.055%까지 떨어졌다.

3대 시중은행 중 하나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의 이 같은 결정이 미쓰비시도쿄UFJ은행과 미즈호파이낸셜그룹 임금협상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이 신문은 전망했다. 이들 은행은 지난해 기본급을 1.5% 인상했다. 앞서 도쿄해상화재보험과 일본생명보험 등도 1회성인 성과급을 올리는 대신 기본급 인상은 접기로 했다. 보험회사도 마이너스 금리 도입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계약할 때 보험료를 한꺼번에 내고 보험금을 받는 ‘일시불 종신보험’ 판매를 중단하거나 보험료를 인상하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장기 금리 하락으로 운용수익률 확보가 힘들어진 탓이다. 메이지야스다생명보험은 지난 23일 신규 계약분부터 엔화 일시불 종신보험 예정이율을 현재 연 0.85%에서 0.75%로 내렸다.

◆엔화가치 상승, 기업 실적에 타격

기업도 엔화가치 상승에 따라 2015회계연도 예상실적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이날 엔화가치는 국제 유가 하락으로 안전자산 선호도가 높아지며 장중 달러당 111엔대로 상승했다. 지난주 잠시 115엔대 근처까지 하락했지만 11일(장중 110.97엔) 이후 최고로 올라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기업실적 전망을 조사한 결과 2015회계연도 경상이익 증가율 전망치는 작년 11월 6.9%에서 이달 2.3%로 떨어졌다. 신흥국 경기둔화로 수출 수요가 줄어드는 가운데 채산성까지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SMBC닛코증권에 따르면 엔화가치가 1엔 상승하면 도쿄증권거래소의 1부 전 종목 주당순이익(EPS)은 0.5% 감소한다. 수출기업인 히타치제작소는 2015회계연도 영업이익 전망치를 당초 6800억엔으로 예상했지만 최근 전년 대비 2% 감소한 6300억엔으로 낮춰 잡았다. 파나소닉, 후지쓰 등도 이익 전망치를 줄줄이 내렸다.

일본 재계단체 게이단렌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엔고가 지나치다”며 “이 수준에서 기말(3월 말)을 맞이하면 기업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임금 인상도 꺼리는 분위기다. 도요타와 닛산자동차 노동조합은 12일 올해 월 3000엔의 기본급 인상을 사측에 요청했다. 지난해 실제 기본급 인상액인 도요타 4000엔, 닛산 5000엔도 밑도는 금액이다. 타결액은 더 낮아질 수 있다. 엔화 강세가 실적에 악영향을 줄 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올 1~3월 일본 자동차업체는 달러당 115~119엔으로 환율을 가정해 110엔 근처까지 오르면 이익은 더 줄어들 수 있다.

구로다 총재는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 대해 “(춘계 노사협상을 앞두고) 기업의 적극적인 의욕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지 않게 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구로다 총재는 마이너스 금리 도입 효과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최근 임금 인상 기운은 전년보다 높지 않다고 아사히신문은 지적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