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스웨덴 덴마크 일본 등 각국 중앙은행이 잇달아 비(非)전통적 통화정책인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행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전무후무한 ‘신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의 세계에서는 빚을 내면 돈을 받고, 예금을 하면 돈을 떼인다. 부채는 갚지 않아도 저절로 줄어든다. 예금을 하는 것보다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게 수익률이 더 좋다. 그렇다면 은행에 돈을 맡길 이유가 없다.

그런데 아직 이렇게 비정상적(?)인 세상이 온 것 같지는 않다. 마이너스 금리가 본격화되지 않아서다. 세계 시중은행 가운데 예금자에게 마이너스 금리를 실제 적용하는 곳은 스위스와 덴마크 등의 일부 은행뿐이고, 그것도 연 -0.125%(스위스 얼터너티브뱅크)처럼 보관료를 조금 물리는 수준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예금금리를 연 0.001% 식으로 아주 미미하게라도 플러스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본격적인’ 마이너스 금리를 볼 가능성이 생겼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행동하겠다”며 더욱 공격적으로 돈을 푸는 통화정책을 약속했다. JP모간은 유럽이 연 -4.52%, 일본이 연 -3.45%, 미국이 연 -1.3%까지 각각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쓸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본격화하면 중앙은행의 기대와 다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도 적지 않다.
[글로벌 금융리포트] '경기부양 극약처방' 마이너스 금리의 세가지 역설
500유로짜리 고액권 없앨 계획

역설적이게도, 돈을 풀기 위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강화하려면 현금을 퇴출해야 한다. 유럽 각국과 ECB는 최근 500유로(약 68만원)짜리 고액권 퇴출과 전자화폐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명목은 테러리스트 등 범죄자의 악용을 막자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선 마이너스 금리 폭을 더 확대하기 위한 수순으로 해석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가 일반화한 세계에서는 ‘0% 수익률’을 가진 현금이 상대적으로 더 수익성 있는 자산이 되는데, 이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고액권이 있으면 보관하기가 훨씬 쉽다.

스티브 체체티 전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은 이와 관련해 “마이너스 금리가 심화하면 은행이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줘서 신용을 창출하는 기능을 잃고 단순 대여금고 노릇만 하게 될 것이고, 은행을 통제하더라도 이런 기능을 하는 새로운 현금보관 서비스 업체가 등장할 것”이라며 “이는 통화량 감소로 귀결돼 오히려 긴축을 유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윌럼 뷰이터 씨티그룹 이코노미스트도 같은 이유로 “마이너스 금리를 확대하려면 현금을 폐기하거나 현금에 세금을 물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이유로 ECB는 전자화폐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사람들의 지갑에서 현금을 없애고 가상의 전자화폐를 쓰게 한다는 것이다. 현금과 달리 전자화폐는 잔액을 인위적으로 줄일 수 있다. 예컨대 1년 뒤에는 금액이 1% 자동 감소하게 설정할 수 있다.

경기부양 목적인데 기업대출 안 늘어

중앙은행의 기대만큼 경기부양에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마이너스 금리 통화정책의 목표는 장기금리를 낮춰 경제 주체들이 돈을 빌리기 쉽게 하는 것이다. 작년 9월 유로존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중 3분의 2는 연 1% 이하 금리로 발행됐다. 그만큼 돈 빌리기가 수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출이 증가하는 것은 주로 기업 쪽이 아니라 부동산담보대출 쪽이다. 덴마크 등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원인이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마이너스 금리는 자산가격을 상승시켜 개인의 소비를 늘리는 ‘부(富)의 효과(wealth effect)’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덴마크 노디아은행의 헬지 피터슨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는 경험을 통해 마이너스 금리가 통화 가치 하락엔 효과가 있지만 대출 촉진에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고 블룸버그통신에 밝혔다.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ECB가 대규모로 채권을 사들인 (양적 완화) 정책은 통화량을 늘려 유로존 은행들이 기업·가계에 대출을 확대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지만 이런 종류의 대출 증가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가상승률 올리는 데도 한계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물가상승률을 높이기 위한 극단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로존의 근원인플레이션(CPI)은 1%를 밑돈다. 펠드스타인 교수는 “유럽의 실업률은 아직 12% 수준으로 경기 침체가 시작되기 전에 비해 5%포인트가량 높다”며 미국과 달리 유럽에선 실질 수요가 자극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효과가 명확하지 않다. 스웨덴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4년 -0.2%에서 지난해 0.4%로 높아졌지만, 스위스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4년 0.01%에서 지난해 -1.1%로 오히려 떨어졌다.

이 같은 역설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직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하지 않고 있는 중앙은행조차 이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씨티그룹은 “중국도 내년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대니얼 그로스 유럽정책연구센터 소장은 “중앙은행은 역효과가 더 큰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경제를 조정하려는 일을 멈추고, 더디더라도 회복이 일어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