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들 "교황, '반이민주의' 트럼프 겨냥해 메시지 던져"
주립 교도소 방문…"재소자들, 폭력의 고리를 끊는 선도자 역할 해야"

멕시코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정 마지막 날인 17일(현지시간) 미국-멕시코 국경 근처에서 진행된 미사에서 이민자들의 참혹한 상황을 언급하며 이들을 향한 인신매매 등의 범죄를 강력히 비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멕시코 시우다드후아레스에서 집전한 미사에서 가난, 폭력, 조직범죄에서 벗어나고자 미국으로 탈출하는 멕시코·중앙아메리카 이민자들이 직면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질타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그는 "(이민자들에게) 더 이상의 죽음도, 더 이상의 착취도 없기를"이라고 기도하며 "이민자들이 인신매매, 납치, 노예 생활, 노동 착취 등의 부당함으로 가득 찬 삶과 이민 과정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법의 허점에 놓인 이민자들은 빈민들을 파괴하고 옥죄는 '망'에 걸려 있다며 이민자들은 가난으로부터 고통받으면서 폭력도 견뎌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부당함을 바꿀 시간과 방법이 존재한다며 삶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서 이민자들을 돕는 조직과 사제들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미국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숨진 이민자들을 애도하는 뜻에서 커다란 십자가의 발밑에 헌화했다.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사에는 100만 명이 모인 것으로 당국은 추산하고 있으며 국경 건너편의 미국 텍사스 주 엘파소에도 교황의 미사를 듣고자 수만 명이 모여들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 국경 근처의 멕시코 도시에서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는 이민자를 언급한 것은 공화당 유력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반(反)이민주의'를 겨냥한 것이라고 주요 외신들은 분석했다.

트럼프는 멕시코 이민자들을 향해 '강간범'이라고 묘사하며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민자들의 현실을 외면했다.

매년 수백만 명의 멕시코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며 그중에는 부모 없는 아이들도 수천 명에 달한다.

멕시코를 방문해 사회 불평등과, 부패, 범죄와 관련해 쓴소리를 쏟아낸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오전 후아레스 주립 교도소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멕시코 재소자들에게 폭력의 고리를 끊는 선도자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재소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활용해 폭력의 악순환과 사회로부터의 소외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또 교도소 마당에 모인 수백 명의 재소자를 향해 "최악의 고통을 겪은 사람에 대해 우리는 지옥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며 "이런 사람들은 사회의 선도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범죄자를 가두는 것만으로 멕시코 사회의 안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구조적이며 문화적인 범죄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통상 외국을 순방할 때 교도소에 종종 들르는 교황은 이번에도 5일간의 멕시코 방문 일정의 마지막 날에 3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후아레스 주립 교도소를 찾았다.

교황이 멕시코를 방문하기 며칠 전에 몬터레이 시에 있는 교도소에서 마약범죄 조직 재소자들 간의 세력 다툼으로 49명이 숨지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수년 전 후아레스 주립 교도소에서도 비슷한 유혈 사태가 발생, 교도소의 과밀 문제를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멕시코 북부 치와와 주에 있는 후아레스는 리오그란데 강을 끼고 미국 텍사스 주 엘파소와 다리로 연결된 국경도시로 이민자 등을 상대로 한 살인과 납치, 마약 범죄로 악명이 높다.

교황은 5일간의 멕시코 일정을 멕시코-미국 국경지대에서 마무리하며 이날 오후 이탈리아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멕시코시티·서울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최평천 기자 penpia21@yna.co.kr, p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