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금융·물류 허브로서의 홍콩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올 들어 글로벌 헤지펀드의 공격 타깃이 되면서 주식 가격과 통화가치가 동시에 급락한 홍콩은 중국 본토 항구들의 약진으로 세계 5위 항구(2015년 물동량 기준)로 밀려나 체면을 구겼다.

홍콩으로의 본사 이전을 추진하던 영국계 HSBC은행이 최근 런던에 남기로 결정한 것도 홍콩의 금융산업 여건과 위상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금융·물류허브 매력 잃어가는 홍콩…성장률도 2%대로 '뚝'
◆물류 허브 매력 잃어가는 홍콩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주요 항구 도시들의 화물 물동량을 비교한 결과 홍콩이 세계 5위로 1년 전보다 순위가 한 계단 하락했다고 17일 보도했다.

중국 상하이가 1위를 차지했고, 싱가포르 선전 닝보 등이 뒤를 이었다. 아시아 물류 허브로서 홍콩의 위상은 10년 전만 해도 난공불락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상하이 선전 닝보 등 중국 본토 항구도시가 급성장하면서 홍콩 위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WSJ는 “홍콩항의 물동량 감소는 중국 실물경기가 둔화한 탓도 있지만 본토 항구도시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주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홍콩항은 부지가 협소하고 수심이 상대적으로 얕아 최근 몇 년 새 중국으로 화물을 실어나르는 대형 선박은 선전이나 상하이를 선호하고 있다.

또 높은 인건비 때문에 화물 선적에 필요한 비용도 홍콩이 중국 본토 항구보다 최대 20%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티머시 로스 크레디트스위스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업이 홍콩 항구를 외면하기 시작하면 그 흐름을 돌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홍콩이 물류 허브로서의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화·주식·부동산도 불안

물류와 더불어 홍콩 경제의 양대 축을 이루는 금융산업 위상도 예전같지 않다. 홍콩은 그동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글로벌 금융회사의 지역본부 역할을 해왔다. 금융산업 규제가 적은 데다 1983년부터 시행한 달러페그제 덕분에 미국 달러화와 비교한 홍콩달러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들어 홍콩달러 가치가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면서 ‘홍콩 정부가 달러 페그제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확산됐다.

블룸버그통신은 “통화가치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데다 최근 몇 년 새 홍콩에 대한 중국 정부의 통제가 강화될 조짐을 보이자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홍콩 진출을 꺼리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세금부담 완화 등을 위해 홍콩으로의 본사 이전을 검토하던 HSBC가 최근 이전계획을 백지화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부동산 거품 붕괴 우려까지 높아지고 있다. 작년 9월까지 고공행진하던 부동산 가격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어서다. 홍콩의 주택 가격은 작년 9월 이후 11% 급락했다. 홍콩 부동산중개업체 센타라인에 따르면 홍콩의 지난달 주택거래량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1년 이후 최저치인 3000가구에 그쳤다.

홍콩 경제를 지탱해온 물류와 금융산업이 흔들리면서 홍콩의 경제성장세도 갈수록 둔화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연간 6~7%대 성장세를 이어오던 홍콩 경제는 2014년 성장률이 2.5%까지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2.3%까지 내려온 것으로 추정됐다.

홍콩 정부는 작년 하반기부터 인프라 투자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을 추진해왔지만 관련 법안의 의회 통과가 지연되면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그러나 지난달 20일 홍콩 경제분석 보고서에서 “외환보유액 규모와 재정여력 등을 감안할 때 홍콩 경제가 경착륙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