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건주 야생보호구역 청사 점거혐의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25일째 계속되고 있는 오리건주 연방정부기관 무장 점거 사태와 관련, 시위대 지도자 등 8명을 체포했다.

체포 과정에서 1명이 숨지고 1명이 부상했다.

26일(현지시간) 현지언론에 따르면 FBI와 오리건주 경찰은 오리건주 소도시 번스 남쪽 프린스턴의 멀루어 국립 야생보호구역 본부청사를 점거했던 애먼 에드워드 번디(40) 등 5명을 이날 오후 4시25분께 체포했다.

FBI는 고속도로에서 이뤄진 체포 과정에서 총이 발사돼 시위대원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했다고 확인했다.

현지 신문 디오리거니언은 번디가 농성 현장에서 북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존데이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발언을 하기 위해 농성 가담자 일부와 함께 자동차로 이동하던 도중 정차 명령을 받고 경찰과 대치하다가 체포됐다고 전했다.

이와 별도로 공범으로 추정되는 1명과 무장 점거농성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한 것으로 알려진 1명도 번스에서 체포됐으며, 또 다른 무장 점거자 1명이 애리조나에서 경찰에 자수했다.

FBI는 사망자와 부상자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포틀랜드에 사는 아리아나 피니컴 브라운은 디오리거니언에 사망자가 자신의 아버지인 55세 라보이 피니컴이라고 밝혔다.

피니컴은 청사 점거 중 기자회견 자리 등에서 자주 마이크를 잡았던 인물로, 시위대의 대변인 격이라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전했다.

디오리거니언은 또 부상자는 애먼 번디의 형인 라이언 번디(43)로, 체포 과정에서 가벼운 총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FBI에 따르면 체포된 이들 8명은 모두 폭력·협박으로 연방공무원의 공무집행을 방해하려고 모의한 중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청사에 다른 시위대가 남아있는지, 남아있다면 몇 명이 있는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농성 주동자격인 애먼 번디가 체포된 만큼 25일째 이어진 점거농성도 곧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이 지역 목장주 드와이트 해먼드(73)와 아들 스티븐(46) 부자가 밀렵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소유한 숲에 불을 지른 등의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받자 이에 항의해 이달 2일부터 멀루어 국립 야생보호구역 본부청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당시 청사 건물은 새해 연휴로 문을 닫은 상태였고, 이들은 총기로 무장한 상태였다.

시위대는 국유지를 지역 주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성을 주도한 애먼 번디와 그의 가족은 이전에도 정부의 총기 규제와 국유지 무단침입 금지 등에 반대하는 운동을 해왔다
애먼 번디의 아버지 클라이븐 번디는 네바다 주의 정부 소유지에 소를 불법으로 방목했다가 미 연방토지관리국으로부터 소떼를 압류당하자 2014년 4월 티파티 등 보수 진영 수천 명과 함께 총으로 무장하고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애먼 번디는 무장점거 사흘째이던 지난 4일 ABC 방송에 "우리가 진심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정헌법 제1조의 권리(발언·표현·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수정헌법 제2조의 권리(무기를 소지하고 민병대를 결성할 권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애초 FBI는 76명이 사망한 1993년 텍사스주 웨이코의 다윗교 농성 사건 등 무리한 진압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건이 재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평화적 해결을 추구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농성이 장기화하면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일부에서는 시위대가 백인인 탓에 공권력이 상대적으로 너그럽다는 비판까지 제기하자 이번에 진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케이트 브라운 오리건 주지사는 이달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연방 당국이 무법 상태를 빨리 종결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고 잘못을 저지른 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조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한 바 있다.

(샌프란시스코·서울연합뉴스) 임화섭 특파원 고미혜 기자 mih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