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스서 손목밴드 찬 난민신청자만 급식 제공

영국에서 최근 난민 신청자들을 빨간색 대문 집에 거주시킨 데 이어 식량 제공을 빌미로 손목 밴드 착용을 강제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25일 가디언과 텔레그래프 영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영국 웨일스의 수도 카디프에서 지난해부터 밝은 색 손목 밴드를 차고 다니는 난민 신청자들에게만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방침은 난민으로 인정받기 전까지는 취업을 하거나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의 처지를 고려하면 사실상 강제적인 조치다.

난민 신청자들은 손목 밴드 강제 착용으로 굴욕감을 느끼고 있으며 눈에 잘 띄는 밴드 색 때문에 인종주의자들의 폭력에 더 쉽게 노출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11월 난민 지위를 얻기 전 한 달간 카디프의 난민 신청자 보호소에 거주했던 에릭 응갈레(36)씨는 "손목 밴드 없이 음식을 받으러 가면 거절당했다.

밴드를 착용하지 않으면 내무부에 보고하겠다고 말한 관계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응갈레 씨는 또 "거리에서 우리가 손목 밴드를 찬 채 걷는 모습을 본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면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거나 더 끔찍한 말들을 퍼붓기도 했다"고 전했다.

수단 출신의 인권운동가로 역시 같은 난민 신청자 보호소에서 3개월간 지냈던 모그다드 아브딘(24)씨는 "손목 밴드는 명백한 차별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2등 인간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 든다"고 성토했다.

난민 신청자들과 관련 단체는 이 조치를 시행한 영국 내무부 계약업체 '클리어스프링스 레디홈스'에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난민 지원단체인 트리니티센터의 클로이 마롱은 "업체 측에 해당 조치와 관련한 우려를 전달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면서 "강제 손목밴드는 이미 적대적인 환경에 처한 난민들을 더 눈에 띄게 함으로써 낙인을 찍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클리어스프링스 측은 난민 신청자 수가 급증하자 지난해 5월부터 식량 지급과 관련한 규정을 더 엄격하게 시행하는 과정에서 손목밴드를 착용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내무부는 관련 질의에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손목 밴드 착용 등 문제를 조사중인 변호사 애덤 헌트는 "이 조치는 따르지 않으면 굶게 된다는 점에서 더 문제가 크다.

난민 신청자들에게 굴욕감을 주지 않고 인종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식량을 배급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에서는 최근 잉글랜드 북동부 미들즈브러에서 난민 신청자들에게 빨간색 대문이 있는 건물을 임시 거주지로 제공해 논란이 일었다.

난민 신청자들이 이 때문에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물리적 공격을 받으면서 '차별 정책'이라는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해당 관리 업체에서 대문 색깔을 바꾸기로 방침을 변경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inishmor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