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동 영향력 확대전략 착수…미국-사우디 에너지동맹에 균열 시도
"주요국 지도자의 사우디-이란 동시방문은 처음"…중동 역학구도 변화조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9일(현지시간) 미국의 오랜 에너지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해 대중동 영향력 확대 행보에 시동을 걸었다.

사우디를 포함해 이집트, 이란 등 중동 3개국은 시 주석이 2016년 새해 첫 정상외교 무대로 선택한 국가다.

이는 중국이 올해 대외 정책의 초점을 중동에 맞췄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특히 시 주석이 이번 중동 방문에서 공을 들일 분야는 에너지와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협력이다.

실제로 아랍권 위성매체 알아라비아와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살만 사우디 국왕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대일로', 에너지, 통신, 항공 협력 등에 관한 14개의 협약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6개 회원국을 둔 걸프협력회의(GCC)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도 서두르는 시 주석은 사우디 방문 기간 중 GCC 지도부와도 회동하고 에너지, 일대일로 협력을 논의할 예정이다.

중국이 중동국가들과 추진하는 이른바 '1+2+3' 협력도 '에너지', '인프라 건설과 무역투자 협력', '원자력에너지·우주위성·신에너지 협력'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의 '텃밭'이었던 중동지역과의 에너지, '일대일로' 협력 강화는 미중 패권대결이라는 관점에서 의미심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중국과 사우디의 에너지 협력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구축된 미국과 사우디 간의 공고한 에너지 동맹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사우디는 중국의 최대 원유 공급처이기도 하다.

또 시 주석이 제창한 신경제구상인 '일대일로'가 가깝게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중앙아시아에서 멀리는 유럽연합(EU), 아랍연맹 등을 경제적으로 결속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사우디의 '일대일로' 동참 행보 역시 묘한 해석을 낳는다.

시 주석은 이날 양국의 새로운 차원의 관계 격상은 전략적 신뢰를 심화하고 상호이익협력을 통해 더욱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고, 살만 국왕은 사우디는 중국의 '일대일로'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 3개국은 시 주석 이번 중동행을 계기로 내심 '중국특수'를 기대하고 있다.

사우디는 유가 급락을 계기로 원자력, 재생에너지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중국의 기술과 자본을 지렛대로 삼으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리사오셴 닝샤대학 중국-아랍연구센터 센터장은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태양에너지와 원자력 에너지를 갈망하고 있고, 중국은 에너지 관련 기술과 자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이날 전투기 네 대를 보내 시 주석의 전용기를 에스코트했다.

또 왕가 실세인 무하마드 빈 살만 제2 왕위 계승자가 공항에 직접 나가 시 주석을 맞았다.

이집트 역시 시 주석의 방문을 앞두고 압델 파테 엘시시 대통령 주재로 내각 회의를 소집하는 등 분주히 대비를 해 왔다.

중국 주석의 이집트 공식 방문은 12년 만이다.

그동안 외자 유치에 애를 써 온 이집트는 시 주석 방문 기간 중국으로부터 10억 달러 상당의 차관을 지원받는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이집트 메일'이 보도했다.

이집트와 중국은 또 크고 작은 프로젝트와 철도 사업에 관련한 협약 또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시 주석은 이란 방문 때도 서방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 해제 뒤 양국 간 경제 협력을 주로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이란 원자력청장은 이날 중국의 협력을 받아 원자력 발전소 2기를 짓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이란 IRNA 통신에 밝혔다.

그는 "두 정상이 테헤란에서 회담할 때 이 의제가 논의될 것"이라며 이란과의 원자력 에너지 협력에 대해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 일부 국가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서방의 대이란 제재 하에서도 이란의 주수입원인 원유 수출량의 40%(일일 40만대럴 안팎) 정도를 사 갈 만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중국의 적극적인 대중동 개입전략은 머지않은 시점에 이 지역의 정치역학 관계를 크게 변동시킬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은 근년 들어 중동에 치중했던 군사·외교적 자원을 아시아로 재분배한다는 개념의 아시아 중심축 이동 전략에 속도를 내며 '중동 출구전략'을 본격화했다.

글로벌타임스를 비롯한 중국 관영언론들은 중국은 중동의 모든 국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유일한 '메이저 파워'라며 시 주석의 이번 순방을 계기로 양측의 관계가 격상될 것으로 전망했다.

우빙빙 베이징대 중동학과 교수는 "최소한 근년 들어 주요국 지도자가 (앙숙관계인) 사우디와 이란을 동시에 방문한 사례가 없었다"고 시 주석의 이번 중동행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카이로·베이징연합뉴스) 한상용 이준삼 특파원 gogo21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