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서 '총기규제' 연설 도중 "1학년생들인데…" 왈칵

평소 '강심장'을 자랑해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왈칵 눈물을 쏟았다.

이날 낮 백악관에서 총기난사 희생자 유족들과 관련 활동가들이 모인 가운데 '역사적인' 총기규제 행정명령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하는 도중 총기난사 사건으로 숨진 샌터바버라 대학생들과 콜럼바인 고등학생들에 이어 코네티컷 주 뉴타운 초등학교 학생들을 열거하다가 갑자기 감정이 북받치는 듯 몇 초간 말을 멈췄다.

이어 "1학년생들…뉴타운"이라고 말을 다시 꺼낸 오바마 대통령의 눈가엔 서서히 물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느 누구도 총기가 사랑하는 아이들의 목숨을 빼앗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다시 말을 멈췄다.

이미 눈물은 양쪽 뺨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왼쪽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훔친 오바마 대통령은 오른손을 입에 대고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나는 총기난사 사건으로 숨진 초등학교 1학년생 20명을 생각하면 미칠 지경"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다시 왼손으로 오른쪽 눈을 훔친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일은 시카고의 거리에서는 매일 일어난다"고 말을 이어갔으나, 눈물은 양쪽 뺨으로 계속 흘려내렸고 오바마 대통령은 또다시 왼쪽 눈을 훔쳤다.

그러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결연한 표정으로 "우리는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총기 로비에 맞서야 한다"며 "우리는 주지사와 입법가들, 비즈니스맨들에게 우리 공동체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나름의 역할을 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위중한 사태의 와중에서도 골프를 즐길 정도로 강한 면모를 보여주던 오바마 대통령이 눈물을 흘린 것은 이례적이지만,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뉴타운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직후 2012년 12월 14일 백악관에서 애도성명을 발표하는 과정에서도 눈물을 흘린 바 있다.

지난 2월에는 에릭 홀더 법무장관의 이임식장에서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번 총기규제 행정명령을 발동하면서 느끼는 개인적 소회가 남다른 것은 분명하다는 게 워싱턴의 정가의 시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뉴타운 사건 직후 총기규제 입법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으나, 미국총기협회(NRA)의 로비를 받은 미국 의회에 발목이 잡혀 좌절을 맛봤다.

특히 뉴타운 사건 이후에는 오히려 '새로운 일상'(a new normal)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줄을 이었다.

2013년 9월 워싱턴D.C. 네이비야드 총기난사(13명 사망)와 2015년 6월17일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흑인교회 총기난사(9명 사망) 사건이 대표적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때마다 총기규제 공론화를 촉구하는 발언을 쏟아냈으나, 힘이 실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눈물이 총기규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미국 시민사회의 공감대를 다시 한 번 확산시킬 것으로 보이지만, 오랜 세월 총기로비에 길들어진 의회를 움직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