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미국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에 나선 민주·공화 양당 주자들의 경제 공약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TV토론과 강연, 기고 등을 통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세제개혁, 최저임금 인상, 정부 부채한도 조정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 속속 내놓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공화당 4차 대선 TV토론회에서는 주자들이 경제 이슈를 둘러싸고 확연한 견해차를 드러내며 난타전을 벌였다.
힐러리도 트럼프도…TPP 반대하는 미국 유력 대선주자들
○공화당 주자들, TPP 입장차 확연

가장 뜨거운 감자는 TPP다. TPP는 타결 한 달 만인 이달 5일 협정문 내용이 공개됐다. 앞으로 대통령 서명과 이행법안 마련, 의회 승인 등의 처리 절차가 내년 11월 대선 투표일까지 이어지게 된다. 대선 마지막 순간까지 이슈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민주당에선 과거 국무장관 시절 TPP를 지지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이 TPP 타결 직후 “미국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으로 돌아서면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주요 주자가 모두 반대하고 있다.

공화당 후보들은 찬반이 확연하게 갈린다. 현재 지지율 선두인 도널드 트럼프는 “TPP는 미 역사상 최악의 협상”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TPP뿐 아니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까지 재협상 또는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의사 출신 보수논객 벤 카슨은 처음엔 비판적 태도를 보였으나 최근 “주요 시장에서 (미국에) 균등한 경쟁 기회를 제공하고 아시아지역 무역 상대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며 대변인을 통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지지율 상승세를 타고 있는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은 TPP에 대한 태도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그는 6월까지만 해도 “TPP는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협정”이라고 기고와 연설 등을 통해 강조했다.

폴리티코 등 미 언론은 “대선 주자들의 TPP에 대한 입장 변화는 선거전략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분석했다. 힐러리가 TPP 반대쪽으로 돌아선 것은 당내 경선에서 노동계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선택이고, 루비오가 TPP 반대쪽으로 선회를 고려하는 것은 대선 본선에 진출했을 때 정치후원금의 출처를 ‘소수 거액 기부자’에서 ‘다수 소액 기부자’로 확대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해석이다. 브라이언 브롱스 미 툴레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루비오뿐 아니라 많은 공화당 주자가 TPP 반대쪽으로 돌아서고 있다”며 “TPP가 선거에서 현 정부와 민주당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감세는 대상과 폭에서 큰 차이

소득 불평등 이슈와 직결돼 있는 세제개혁 이슈는 감세라는 측면에서 민주·공화 양당이 같은 방향이지만 감세 대상과 폭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힐러리와 샌더스는 감세 대상을 중산층과 중소기업에 집중하고, 부유층에 대해서는 증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화당 주자들은 소득·법인세율 인하, 세금 감면 조항의 대대적 정리 등 큰 방향에선 비슷하다. 루비오는 지난달 소득별로 7단계인 세율을 연소득 7만5000달러를 기준으로 15%와 35%로 단순화하고,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5%로 낮추는 세제개혁안을 내놨다. 10년간 6조달러(약 7200조원) 규모에 달하는 초대형 감세안이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도 법인세(35%→20%)와 소득세(39.6%→28%) 최고세율을 낮추고 세율 구간을 정비하는 10년간 3조4000억달러(약 4080조원)짜리 감세안을 발표했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 대해서는 민주당 주자 모두가 최소 시간당 15달러는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미국 연방정부가 기준으로 제시하는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다. 공화당 주자들은 10일 TV토론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실업자를 늘릴 것이라며 교육과 직업훈련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같은 목소리를 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