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10년 주기론으로 본 '2015년 9월 위기설' 실체
미래의 불확실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를 계기로 이전보다 더 영향력이 커진 심리요인과 네트워킹 효과로 ‘긍(肯·긍정)’과 ‘부(否·부정)’, ‘부(浮·부상)’와 ‘침(沈·침체)’이 겹치면서 앞날을 내다보기가 힘들어졌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럴 때일수록 예측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1990년대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세계 경기는 사이클이 사라졌다든가, 있더라도 그 폭이 줄어들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정도로 장기호황을 경험했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겪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는 그 어느 쪽도 옳은 결론이 아님을 보여줬다. 오히려 금융을 중심으로 네트워킹이 진전되는 경제에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더 커졌다.

종전 경기순환은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발생했다. 경기순환이론대로 경기가 호황을 지속해 물가가 문제되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해 안정시키는 대신 경기는 침체국면에 들어섰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의 경기순환은 침체가 국지적으로 발생했을 뿐 세계적인 침체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10년 주기론으로 본 '2015년 9월 위기설' 실체
반면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가 금융불안에서 비롯했다는 점은 종전과 같으나 △각국이 동반 침체한다는 점 △금융불안에서 실물경제 침체로 전이속도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점 △경기 하강폭이 짧은 순간에 대공황 때에 버금갈 정도로 커진 점 △가격변수의 ‘순간 폭락’ 현상이 잦아진 점 △위기가 계속 이어지는 ‘진행형’이라는 점이 다르다.

예측기관도 종전 경기순환패턴을 기초로 한 전망(혹은 차트 분석)이 경제의 흐름을 짚어내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함에 따라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앞으로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금융위기를 계기로 확인된 네트워킹 효과와 심리적 요인 등에 대한 재평가가 있어야 한다.

세계 경제를 특징짓는 뉴노멀 현상은 종전의 글로벌 거버넌스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금융위기는 2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를 주도한 미국을 비롯해 선진 7개국(G7)에서 발생했다. 이제 위기 이전에 통용됐던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신뢰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이행 강제력은 땅에 떨어졌다.

뉴노멀 시대에는 세계 경제 최고단위가 ‘G7’에서 ‘G20(주요 20개국)’으로 이전됐다. 국제금융질서도 미국 주도의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아시아개발은행(ADB)과 동일하게 중국 중심의 긴급외환기금(CRA)·신개발은행(ND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간 ‘3×3 매트릭스’가 형성되고 있다.

글로벌 추세는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각국의 이익이 보다 더 강조되는 과정에서 글로벌 추세와 충돌이 잦다. 통상환경은 신(新)보호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산업정책은 ‘리쇼어링’ 움직임이 거세다. 국제기구의 회의론과 함께 신역할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경제학에도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주류 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 간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이 그것이다. 금융위기를 계기로 ‘합리적 인간’을 가정한 주류 경제학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하는 대신 심리학, 생물학 등을 접목해 행동경제학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계기로 실체가 드러난 행동주의 헤지펀드도 같은 맥락이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가정이 무너진다면 자유와 창의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에도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금융위기와 같은 시장실패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부여해 준다. 시장과 국가가 경제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혼합경제가 유행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많은 분야에 걸쳐 변화를 몰고 오는 뉴노멀이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로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다. 이 상황이 닥치면 뉴노멀에 대한 실망과 금융위기 이전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향수까지 겹치면서 ‘규범의 혼돈’ 시대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시스템 없는 뉴노멀 시대에 진행되고 있는 경기 논쟁도 ‘소프트패치(일시 침체 후 회복)’냐 아니면 ‘더블딥(짧은 경기 회복 후 재침체)’이냐 하는 경기순환상 진전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서는 의미가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1차 미국 주택위기, 2차 유럽 재정위기에 이어 또 다른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느냐다.

최근 거론되는 각종 9월 위기설 가운데 ‘신흥국 상품 위기설’이 주목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10년 주기론에 따라 1987년 블랙 먼데이(선진국 증시),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신흥국 외환시장),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선진국 부동산)에 이어 다음 위기는 신흥국 상품시장에서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일찍부터 예고됐기 때문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