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금융시장이 중국을 진원지로 한 태풍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시장의 혼란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조짐과 맞물리며 1997년 발생한 아시아 외환위기 경로를 따라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발 통화위기, 아시아 강타

[커지는 '중국 리스크'] 아시아 화폐가치 일제히 급락…'중국발 9월 금융위기' 현실화하나
24일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가치는 0.61% 하락하며 달러당 1만4030루피아까지 떨어졌다. 1998년 이후 최저치다. 중국 증시의 폭락과 경기 둔화 우려가 안전통화인 달러 강세를 유발하면서 대외변수에 취약한 동남아 국가의 외환시장이 패닉상태에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달 초 전격적으로 단행된 중국 위안화 가치 절하가 아시아 외환위기로 이어졌던 1994년과 비슷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21년 전인 1994년 1월 중국은 수출 확대와 경기 회복을 이유로 위안화 통화가치를 달러당 5.8위안에서 8.7위안으로 33% 절하했다.

이와 맞물려 미국으로 자금이 밀려들면서 증시거품 우려가 제기되자 미국 중앙은행(Fed)은 1994년 2월 연 3%였던 기준금리를 1년 만인 1995년 2월까지 두 배 수준인 연 6%로 끌어올렸다.

미국의 예고 없는 금리 인상은 세계 금융시장을 충격으로 몰아넣으면서 인접국인 멕시코와 남미의 경제대국인 아르헨티나를 국가부도 상태에 빠뜨렸다. 이어 태국 바트와 필리핀 페소 등 동남아 통화가치가 급락하면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블룸버그는 이달 초 중국 정부의 세 차례에 걸친 전격적인 위안화 절하와 원자재 수입 감소가 신흥국 통화가치 급락으로 이어지면서 21년 전과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환당국 한 관계자는 “향후 한 달 이내에 경제 여건이 취약한 동남아 국가 한두 곳에서 외환위기가 터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상황과 달라” 반론도

1994년 당시와 지금을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중국이 증시 폭락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위기를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월가의 한 투자은행 관계자는 “중국 증시의 변동이 중국의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며 “현재 벌어지는 금융시장에 대한 시장 공포는 지나치다”고 말했다.

모건스탠리도 신흥시장 위기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건스탠리는 신흥국의 부채구조가 해외 부채가 아닌 국내 부채 비중이 높고, 물가상승률이 낮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데다 경상수지가 흑자를 유지하는 등 펀더멘털(기초여건)이 안정돼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블룸버그도 현재 상황이 1994년과 비슷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경상수지와 재정 여건, 외화보유액은 당시보다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와 시장 충격도 1994년과 다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무엇보다 Fed가 금리 인상에 나서더라도 글로벌 금융시장의 충격을 감안해 인상 속도를 완만하게 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Fed의 기준금리 전망도 2017년 말에야 연 3%에 도달할 것으로 점쳐지는 등 1994년과 비교하면 세 배 이상 인상 속도가 느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인상 시기도 9월이 아닌 연말이나 내년 이후로 연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최근 미국의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 공개 직후 공식 금리 인상 전망 시점을 9월에서 12월로 늦췄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