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대응 불신 키워, 언론은 톈진항 사고에 집중

중국 톈진(天津)항에서 발생한 초대형 폭발사고로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에 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 발생한 폭발사고는 200명에 가까운 사망·실종자를 가져오는 대형사고였던 데다 사고 발생 열흘이 다 돼 가도록 수습은커녕 2~3차 환경오염피해에다 각종 문제점까지 불거지면서 오히려 사태가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9월 3일 대규모 열병식을 통해 지난 70년간 '전쟁의 포화'를 딛고 현재 주요 2개국(G-2)으로 올라선 중국의 위상을 과시하며 대대적인 경축 분위기를 조성하려던 시진핑(習近平) 지도부로서는 대형 돌발 악재에 직면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는 20일 오전 개최할 예정이던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 기자회견을 돌연 취소했다.

당초 중국은 군 고위당국자 등을 불러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열병식 준비상황 등을 설명하며 2주 앞으로 다가온 열병식에 관심을 집중시키려는 복안이었다.

갑작스러운 취소 이유에 대해 열병식 준비 상황이 미진하거나 참석예정자의 일정이 갑작스럽게 변경된 것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관측과 함께 톈진항 사고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일각에선 대형 참사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항일전쟁 승리와 열병식을 홍보해 대대적인 경축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판단 속에 전격적으로 기자회견을 연기한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은 열병식을 한 달 앞둔 3일을 기해 보안 강화, 교통통제, 대기오염 방지 등 각종 대책을 쏟아내며 열병식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총력 태세에 돌입했다.

중국 언론들은 이후 열병식과 항일전쟁 승리의 의미, 일본의 역사 인식 등을 다룬 기사와 칼럼들을 대거 보도하며 정부의 정책에 화답했다.

그러나 중국 주요 매체의 보도 초점은 12일 톈진항 사고 이후 20일 현재까지 열병식이 아닌 톈진항 사고 쪽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 누리꾼들도 톈진항 사고의 인명피해와 소방관들의 희생 등을 안타까워하는 데서 나아가 제2~3차 환경오염 피해, 신경성 독가스 유출 가능성 등을 두고 정부의 대응을 불신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아울러 이번 사고는 단순한 안전사고가 아니라 사고업체를 둘러싼 각종 비리와 부정 의혹이 제기되면서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비화할 조짐마저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사고 조사와 관련, 누구를 막론하고 철저히 조사해 잘못이 있을 경우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지만, 중국인들의 당국에 대한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이번 사고 이후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각종 루머와 소문이 제기돼 중국 당국은 인터넷 계정을 폐쇄하는 등 철저한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이번 톈진항 사고에 대한 중국 당국의 대응은 유엔으로부터 투명성 부족이 심각하다는 공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바스쿠트 툰칵 유엔 위험물질·폐기물 담당 특별조사관은 1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톈진 폭발사고를 완화하거나 어쩌면 막을 수 있었던 정보가 필요할 때 없었다는 것은 정말 비극적"이라고 말했다.

톈진항 사고 발생과 이에 대한 중국 당국의 대응은 겉으로는 G2-로 올라설 정도로 국력이 신장됐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각종 문제와 모순을 안고 있는 중국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란 외신들의 신랄한 비판도 초래했다.

중국은 오는 22일부터 열병식 리허설 현장을 외신에 공개하며 순차적으로 열병식 분위기를 띄운다는 복안이지만, 톈진항 사건의 후폭풍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어서 고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베이징연합뉴스) 홍제성 특파원 js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