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방문-열병식 참석 분리' 주문…"방중시 한중일 3국 정상회담 열어야"
"아베담화, 관계개선 기여"…박 대통령 경축사에 "절제되고 사려깊어" 높이 평가


미국 싱크탱크의 일부 전문가들은 18일(현지시간)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 달초 중국 항일전승행사 참석차 베이징을 방문하는 것은 좋지만, 군사적 행사인 열병식에 참석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이날 미국 워싱턴D.C. 헤리티지재단에서 '아베 담화 이후의 한일 관계'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박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과 열병식 참석을 분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이어 "한국 정부의 목표가 평화와 협력, 화해에 있다면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그 같은 목표에 다가설 수 있겠는가"라며 "한국을 침략했던 마지막 국가(중국을 지칭)가 행하는 열병식에 한국의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이 과연 적절하냐"고 반문했다.

실라 스미스 미국외교협회(CFR) 일본담당 선임연구원은 "중국의 전승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어떤 민주국가의 지도자도 중국의 열병식에 참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가세했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지난해 5월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 및 신뢰 구축 회의'에서 동맹의 해체를 담은 내용의 공동성명 초안을 작성했으나 한국만 유일하게 여기에 서명하지 않은 적이 있다"면서 한국이 이번 열병식 참여문제를 놓고 비슷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린 연구원은 이어 "박 대통령이 열병식 이전보다 이후에 가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들 전문가의 시각은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행사 참석문제와 관련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내부의 입장을 투영하고 있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평가다.

주로 지일파인 이들 전문가는 아베 총리가 14일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와 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대해 "한·일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를 계기로 양자 또는 3자 정상회담에 나설 것을 적극적으로 주문했다.

특히 스미스 연구원은 "박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역내의 평화와 안정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보다 큰 기회가 있다"며 "두 지도자의 베이징 방문 계기에 3국 정상회담을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가을이 3국 정상회담이 열리기 가장 좋은 시기"라며 "한·일 양국이 관개 개선의 긍정적 기회를 만드는 방법을 찾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스미스 연구원은 이어 한·일 양국 정부가 정상회담 개최에 따른 위험부담을 져야 하는 문제에 대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어려운 문제를 풀 수가 없다"며 "정상회담 이전에 미리 정해진 포괄적 해법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주한 미국 부대사를 지내기도 했던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나는 한국과 일본 외교관들의 창의성과 지성에 큰 신뢰를 갖고 있다"고 강조하고 "진정한 위험은 역내의 점증하는 안보 불확실성 앞에서 한·일 관계가 악화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린 연구원은 "박 대통령이 중국에 간다면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것이 (외교적으로) 덜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아베 담화와 관련, 스미스 연구원은 "아베 총리가 과거에는 하지 않었던 언급을 하면서 교훈을 얻은듯한 접근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아베 총리가 '참략' '식민지배' 깊은 반성' 사과' 등 일본 나름의 언어를 이용해 전쟁과 과거사, 사과문제에 대해 언급했다"며 "이 담화를 계기로 양국이 노력한다면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앞으로 일본 정부가 내놓을 전후 담화가 이번 담화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어려워보인다"며 "그러나 그 때문에 양국관계가 '펑크'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들 전문가들은 특히 박 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해 절제되고 신중한 기조 속에서 양국이 앞으로 협력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리비어 부차관보는 "박 대통령은 매우 현명하고 신중하며 국가지도자 다운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스미스 연구원은 "박 대통령의 담화 내용은 매우 절제되고 사려깊었다"고 말했고, 그린 연구원도 "매우 잘 짜여졌다"고 평가했다.

한편, 스미스 연구원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며 "2차대전 당시 위안소에 강압적으로 끌려가 고통을 입은 여성들은 정의를 추구할 자격이 있다"며 "한일 협정의 재협상 여부나 법적 문제를 떠나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리비어 부차관보는 "아베 총리는 한국 국민을 향한 별도의 언급(stand-alone reference)을 내놨어야 한다"며 "양국 관계를 복잡하게 만든 위안부 여성에 대한 특별한 언급을 할 기회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