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한 일상까지 파고드는 채권단의 개혁압박에 그리스인들 '푸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이 3차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그리스에 요구하는 개혁 조치가 1만5천여개에 달하는 동네빵집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면서 그리스인들의 푸념이 늘어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채권단은 유럽에서 가장 보호된 시장으로 분류되는 그리스에 시장개방과 경제개조를 요구하면서 빵집과 약국, 유제품 등 세세한 분야에까지 개혁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리스제빵사연합의 미하엘 모시오스 회장은 "유로존 정상들이 17시간 동안 치열한 협상을 하는 와중에 빵을 어떻게 할 지까지 논의했다는 것을 신문에서 읽다 보니 웃음이 나왔다"면서 "빵을 미용실에서 팔 것인지 말 것인지가 (그들이 보는) 그리스의 문제라는 것이 아주 웃긴다"고 말했다.

그리스 빵집이 부채위기의 주범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동네빵집들은 860억 유로의 3차 구제금융 대신 거대한 변화에 직면하게 될 전망이다.

그동안 슈퍼마켓 등에서의 빵 판매에 제약이 된다고 지목된 동네빵집에 대한 보호규정이 철폐됨에 따라 채권단은 표준화된 빵무게과 공장빵에 대한 높은 부가가치세를 철폐하라고 압박을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스 빵집들은 전통적으로 빵 한 덩이의 무게가 500g과 1kg으로 표준화돼 있다.

깨를 뿌린 베이글 같이 생긴 전통빵 '쿨루리'는 30년째 80g이 표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소비자 선택의 폭을 늘리고 빵 시장이 개방될 수 있도록 빵 무게 표준을 없애라고 권고했다.

그리스 공장빵협회 소속 게오르그 마브로마라스는 세금이 (빵 문제의) 핵심 이슈라고 설명했다.

그는 채권단이 개혁을 통해 빵집에서 구운 빵에 붙는 부가가치세 13%와 슈퍼마켓에서 팔리는 공장빵에 붙는 23% 간 차이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 동네빵집의 최대 공포는 제빵업계 규제완화로 카페나 패스츄리를 파는 가게에 '베이커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테네 외곽에서 작은 빵집을 운영하는 테오도로스 디무는 "그리스의 1만5천개 동네빵집에서 14만명이 일하고 있다"면서 "모로코에서 수입한 빵을 팔면서 베이커리라고 부르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손님들도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동네빵집들은 제빵업계 관련 개혁법안 입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각종 소문이 퍼지면서 빵에 깨를 뿌리면 사치품으로 분류돼 부가세가 23% 붙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빵집 외에도 슈퍼마켓과의 경쟁에서 보호를 받아온 약국과 건강관련 규제로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된 우유 가격의 수혜를 입어온 유제품업계도 채권단의 개혁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yuls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