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IS격퇴 '현실외교' 명분 이란과 전략적 제휴 주목
핵협상 합의 이행이 관건…미국 여전히 "이란은 위협국"

14일(현지시간) 타결된 이란 핵협상은 미국 대외 정책 운용 기조의 변화를 보여주는 풍향계가 되고 있다.

흔들리던 국제 비확산 체제를 다잡는 동시에 세계 최대 화약고인 중동 지역을 다루는 미국의 전략이 조심스럽게나마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에는 이번 협상 타결은 북한과 함께 국제 비확산 체제에 도전해온 이란의 핵개발 드라이브에 제동을 건 점이 무엇보다 의미가 있다.

이란의 핵주권을 부분적으로 인정해주기는 했으나, 중동의 맹주인 이란이 본격적으로 핵보유국의 길을 걷는 시나리오를 감안하면 이번 합의는 '차선의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집권 초부터 '핵없는 세상'을 주창해온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남은 임기 동안 북핵 문제와 테러조직 등 비국가 행위자들을 겨냥한 핵안보 문제에서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할 여지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미국 대외 정책에 던지는 더 큰 함의는 1979년 이슬람 혁명과 테헤란 미 대사관 점거 사건 이후 국교가 단절됐던 이란과 36년 만에 '화해'하는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냉전시대 적성국이었던 쿠바와 국교정상화를 선언한 데 이어, 중동지역에서 '주적'에 해당하는 이란과도 관계 개선을 꾀할 수 있는 중요한 국제정치적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란과 평화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1980년대 이후 역대 미국 정부가 전통적으로 취해온 중동 정책에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미국은 중동 지역에서 석유 자원의 안정적 공급과 역내 군사적 패권유지를 사활적 이익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 아라비아와 안보적 동맹 관계인 이스라엘을 중동 지역의 '전략적 코너스톤'으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이슬람 국가(IS)라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반군이 중동 지역의 최대 정세불안 요인으로 부상하고, 시리아와 예멘, 팔레스타인 분쟁사태가 갈수록 '진흙탕'에 빠져들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중동의 현실적 패권국인 이란의 협조 없이 지역의 안정을 꾀하기 힘들고 미국의 이익도 확보하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은 수니파의 본산인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항하는 지역 맹주로서 이라크와 시리아, 레바논을 세력권에 두고 있어 미국으로서는 IS 격퇴를 위해 전략적 협조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물론 미국으로서는 여전히 사우디 아라비아로부터 석유 자원의 안정적 공급이 필요하고 지역 패권을 유지하려면 맹방인 이스라엘과의 동맹이 긴요하다.

그러나 셰일가스 등 대체 자원의 개발로 사우디에 대한 석유의존도가 낮아진데다가, 이란과의 관계가 실질적으로 개선된다면 또 다른 안정적 공급원 확보가 가능해진다.

특히 사우디의 새 왕조는 아직 대외 정책에 적극성을 띨 만큼 '연착륙'하지 못한 상태이다.

여기에 이스라엘과의 동맹만으로는 난마처럼 얽힌 중동 지역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번 협상 타결은 미국이 중동정세를 관리한다는 '현실외교' 측면에서 이란을 전략적 제휴의 대상으로 삼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이라크 정규군만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운 IS 격퇴를 위해 이란과 군사적으로 손을 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라크 정규군과 함께 IS 공격의 주력 부대로 꼽히는 시아파 민병대는 사실상 이란이 지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차기 합참의장으로 지명된 조지프 던포드 해병사령관은 지난 9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중국, 북한, IS를 미국 국가안보의 최대 위협으로 꼽으면서도 이란은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양국 관계가 기대만큼 실질적 진전으로 이어질지는 속단하기 이르다.

무엇보다도 타결된 합의 내용이 순조롭게 이행될 것이냐가 큰 물음표다.

이행 과정에서 이란이 약속을 위반하거나 미국이 제재 해제를 미적거린다면 양측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합의 자체의 근간이 뒤흔들릴 수 있다.

특히 공화당이 이끄는 의회가 이번 협상 자체에 반대하는 점이 걸림돌이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 행정부가 이룬 합의를 내년 대선을 통해 권력을 잡을 '차기 정권'이 그대로 이행한다고 보장하기도 힘들다.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체결된 북핵 제네바 합의가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뒤 순조롭게 계승되지 못한 전철을 되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란도 앞으로 온건파인 로하니 정권이 군부 강경 세력으로 대체될 경우 이번 합의가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특히 미국은 최근 발간한 '2015 군사전략보고서'에서 이란을 러시아, 중국, 북한과 함께 4대 위협국으로 꼽고 있어 실제로 군사적 협력을 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이란은 여전히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적국의 범주에 들어가 있으며 이번 합의가 완전히 이행될 때에만 관계 정상화가 가능할 것"이라며 "IS 격퇴를 위해 협력하더라도 이는 매우 소극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이 꽝꽝 얼어붙었던 미국과 이란의 관계에 '해빙 무드'를 조성하고 이것이 국교 정상화와 미국의 대(對) 중동정책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만은 분명하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지배적인 견해다.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