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카스트로 '역사적 회동' 후에도 쿠바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 답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11일(현지시간) '역사적 회동'을 했지만, 두 나라 사이의 외교관계 정상화는 여전히 속도조절과 탐색 국면에 머물 전망이다.

지난 2월 양국간 2차 고위당국자 협상에서 쟁점이 됐던 쿠바의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가 1958년 이후 처음으로 두 나라 정상간의 정식 대화가 이뤄진 뒤에도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남았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후 미주기구(OAS)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파나마에서 카스트로 의장과 따로 만나 1시간여동안 대화한 뒤 기자회견장에 나왔지만, 쿠바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뺄 지에 대해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두 나라 정상이 "어떻게 사회가 조직돼야 하는지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고 전한 오바마 대통령은 "서로 다른 미래에 대해 조심스럽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에둘러 말했다.

정치 분석가들은 테러지원국 해제가 선결 과제라는 쿠바 측과 쿠바의 인권보호대책 강화를 요구한 미국 사이의 간격이 결국 좁혀지지 않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카스트로 의장과의 대화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국무부가 (테러지원국 해제 여부에 대한) 검토를 끝냈지만 아직 (최종 권고안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는 전날 "최종 권고안이 아직 나한테 넘어오지 않은 상태"라면서도 "상황이 바뀌게 되면 테러지원국 명단 역시 같이 바뀌는 것"이라며 쿠바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던 것과 달라진 어조다.

미국과 쿠바 간 관계정상화의 가장 큰 걸림돌인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에 대해 두 나라가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함에 따라 앞으로 당분간은 이 문제를 놓고 밀고 당기는 협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정치 분석가들은 전망했다.

작년 12월 국교정상화 선언 이후 불과 4개월만에 양국 정상간 직접 공식대화가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협상 진전의 체감 속도는 크게 떨어지게 되는 셈이다.

미국이 지난 54년간 쿠바에 대해 무역금지 조치를 가동해 오고 있어 민간 교류를 통해 협상을 진척시킨다는 구상의 추진력 역시 제한적이다.

일각에서는 두 나라가 인적 교류를 점진적으로 늘려 가면서 인권문제에 접점을 찾으려 시도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카스트로 의장과의 대화가 "솔직하고 결실있었다"며 "미국과 쿠바 두 나라의 대다수 사람들은 교역과 여행, 인적교류의 길을 여는 일이 궁극적으로 쿠바 사람들에게 좋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카스트로 의장도 회담 직전 기자들 앞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인사하면서 "우리는 대사관을 열고, 서로 방문하고, 사람들끼리 오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쿠바도 인적 교류를 통해 미국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접점을 찾으려 시도할 것임을 시사한다.

(워싱턴연합뉴스) 김세진 특파원 smi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