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하락 틈타 각종 위기설 확산
러시아 등은 고위험 국가군 속해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유가 50달러대 추락…'신흥국 상품위기'로 번지나

미국의 양적 완화 종료 이후 원유를 중심으로 시장 흐름이 혼탁한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 각종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러시아 제2 모라토리엄 우려, 그리스발 유로존 2.0 위기,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가능성,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제2 외채위기, 중국의 부동산 거품 붕괴설, 한국의 골든타임 위기설 등이 그것이다.

최근 나돌고 있는 위기설이 빠르게 공감대를 얻어가는 것은 위기가 일정한 시간을 두고 반복된다는 ‘주기설’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 1997년 10월 아시아 외환위기, 2007년 10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금융위기가 10년마다 반복된다는 10년 주기설이다. 다음 번 위기는 10년 주기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경고가 오래전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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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위기설이 난무함에 따라 다음 위기로 악화될 수 있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티핑 포인트란 세계경제 상황을 언제든지 바꿔놓을 수 있는 부정적 의미의 변수를 말한다. 각국이 티핑 포인트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6년 전 위기와는 또 다른 형태의 위기가 발생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중 하나가 상품위기다.

내년에 예상되는 티핑 포인트 가운데 미국 자산시장의 거품 붕괴가 가장 우려된다. 금융위기 이후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미국 증시로 자금이 몰렸다. 선택할 수 있는 안전자산이 제한됨에 따라 국채로의 쏠림현상도 심했다. 미국 자산시장에 낀 거품이 꺼진다면 국제 자금 흐름을 흐트러뜨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의도했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도 주목된다. 금융위기 이후 엔화 강세는 일본 경제 여건과 관계없이 아베노믹스가 실패하면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는 행태변수다. 이 경우 2012년 12월 아베노믹스에 따른 성과마저 무력화되면서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에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로존이 붕괴될 소지도 변수다. 유로존의 보루 격인 독일 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근본 원인이 미해결 상태인 유럽 재정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회원국 내부에서 분리 운동이 확산되는 것도 유로존에는 부담이 되고 있다.

내년에는 각국이 자국 통화 평가절하에 뛰어드는 글로벌 환율전쟁이 가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이 속한 아시아 지역에서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 어느 때보다 각국 간 협조가 긴요한 상황에서 평가절하와 같은 극단적인 경제이기주의로 나아간다면 세계 경제는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원자재 가격 ‘슈퍼 사이클’ 종료가 지속될지 여부도 변수다. 원자재 가격이 떨어진다면 한국과 같은 원유수입 의존도가 큰 국가를 중심으로 세계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디플레이션(침체 속 물가 하락)과 디스인플레이션(성장 속 물가 하락) 등 ‘D의 공포’가 확산되는 국면에서는 경제 활력 저하로 부정적인 측면이 더 우려된다.

금융위기의 시장별 발생 패턴과 미국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때를 감안하면 차기 위기는 신흥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1983년 이후 신흥국 위기 15건은 대부분 선진국의 금리인상 기간 전후로 발생했다. 1999년 이후 2012년까지 강세 국면을 보인 신흥국 상품시장은 오래전부터 차기 위기 후보지로 주목을 받아왔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시장, 하나의 경제(one world, one market, one economy)’로 상징되는 초연결 시대로 접어든 이후 위기판단기법으로 캐나다 중앙은행이 개발한 금융스트레스지수(FSI·financial stress index)가 각광을 받고 있다. 종전의 판단지표는 각종 위기에 제한적으로 접근해 금융시스템 전반의 움직임과 위기 발생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지수화해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융스트레스지수란 ‘금융시장과 정책당국의 불확실한 요인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피로도’로 정의한다. 금융변수의 기대값이 변하거나 분산이나 표준편차로 표현되는 리스크가 커질 경우 금융스트레스를 높이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특정국의 피로도가 높게 나오면 해당국에 유입됐던 외국 자금이 그만큼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신흥국별 금융스트레스지수를 산출해 보면 경상과 재정수지가 건전하고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쌓아놓고 있는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한국 등은 위기 가능성이 낮게 나온다. 하지만 외환보유액이 적고 경상과 재정적자가 심한 러시아, 베네수엘라, 우크라이나,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은 높게 나온다. 모두 유가 움직임과 밀접한 국가들이다.

내년 성장률이 하향 조정되는 한국 경제는 각종 위기설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충격이 의외로 커질 수 있다. 당리당략과 이해관계보다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는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6년 전 금융위기처럼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닥치는 재산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노력과 특정수단으로 쏠리지 않는 균형감이 필요한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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