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 소송 실익없다"…삼성·애플, 화해모드로 급선회
‘골리앗 간 소송이 막을 내리는가.’

삼성전자와 애플이 6일 미국 외 국가에서 특허 소송을 전면 철회하기로 하자 최종 합의 수순을 밟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애플은 2011년 4월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베껴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삼성전자를 미국 연방법원에 제소한 뒤 10개국으로 전선을 확대해나갔다. 하지만 올 들어 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화해 움직임이 감지됐다.

지난해 8월 삼성의 갤럭시S2와 갤럭시탭 10.1에 대한 미국 내 수입금지 결정을 내렸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판결에 항고했던 두 회사가 올 6월 나란히 취하했다. 중국 샤오미 등 후발업체들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송전에 힘을 쏟다가는 글로벌 스마트폰 1, 2위 업체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번 결정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간 막후 협상을 통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맹추격에 “소송부담 덜자”

두 회사가 특허소송 전선을 미국으로 국한하기로 한 것은 여타 국가에서의 소송에 따른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소송 비용 부담이 큰 데다 양사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마케팅 전략, 내부 이메일 등이 공개될 수 있다.

판매금지 등 최종 판결이 나온다 해도 이미 해당 제품은 1~2년 전에 나온 제품이어서 패소당한 측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두 회사는 400여명의 특허 전담 인력을 꾸렸고, 수천억원을 소송 비용으로 써왔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쓴 변호사 수임료만 각각 25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최근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급변하는 등 경영 환경이 바뀐 것도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2년 전부터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절반을 웃돌던 삼성전자와 애플 두 회사의 점유율은 지난 2분기에 30%대로 내려앉았다. 화웨이 레노버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에 시장을 빼앗긴 탓이다.

그러나 두 회사는 배상액 규모가 큰 미국에서의 소송은 계속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최종 합의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두 회사가 다른 국가에서 소송을 취하한 뒤 미국에서 진행 중인 1·2차 소송에 더 집중할 경우 미국에서의 소송전은 더 치열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에 유리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미국 배심원단이 삼성전자보다 자국 기업인 애플에 유리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있어서다. 현재 1차 특허 소송은 삼성전자가 애플에 9억3000만달러(약 9574억원)를 배상하도록 하는 판결이 나온 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2차 특허소송에선 배심원단이 삼성전자는 애플에 1억1960만달러(약 1230억원), 애플은 삼성전자에 15만8400달러(약 1억6300만원)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미국 재판부의 최종 판결은 연말께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의 협상 리더십 주목

이번 특허소송 철회 협상은 이 부회장이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 달 새 두 차례나 미국 출장길에 오른 이 부회장은 팀 쿡 CEO를 만나 최종 합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과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 삼성은 지금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글로벌 사업을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의 갑작스런 특허소송에 경종을 울리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애플과 협력을 강화하면 일감이 줄어 고민 중인 시스템LSI사업을 활성화할 수 있다. 글로벌 인맥을 확보하고 있는 이 부회장이 낸 성과라는 점에서도 이번 결정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7일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앨런&코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팀 쿡 CEO와 만났고 2주일 뒤인 지난달 29일 다시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이 부회장은 애플과 치열한 소송전을 벌이던 와중에도 애플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 팀 쿡 등 애플 수뇌부와 친분을 쌓았다. 2011년 스티브 잡스 장례식에는 국내 재계에서 유일하게 이 부회장이 초청받기도 했다.

틀어졌던 양사 비즈니스 다시 정상 회복될까

특허분쟁으로 틀어졌던 양사 간 비즈니스도 점차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 애플은 한때 삼성전자의 반도체 디스플레이를 구매하는 최대 고객이었으나 소송이 터지면서 구매처를 미국 일본 업체로 바꿨다. 업계에서는 한때 애플이 삼성전자에서 구매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금액이 12조원을 웃돌았으나 최근에는 7조~8조원대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애플은 반도체 부문에서는 여전히 삼성의 주요 고객이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 제품에는 모바일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가 들어간다. 특허 분쟁 이후 애플은 미국 마이크론, SK하이닉스 등으로 D램 구매처를 확대하며 삼성 부품 구매를 줄여왔다.

애플이 줄곧 삼성전자에 맡겼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파운드리도 최근 거래처를 대만 TSMC로 바꾸기도 했다. 이 여파로 삼성전자의 비메모리사업부인 시스템LSI사업부는 일감이 줄어들어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이번 화해모드 조성으로 삼성은 애플과 협력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박영태/전설리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