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리더십' 재조명…對러시아 수세국면 반전 주목
"반군에 미사일시스템 제공 증거 명백" 국제적 여론몰이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사건이 사면초가에 내몰린 오바마 외교에 '돌파구'를 마련해줄지 주목된다.

미국이 외교력을 어떻게 발휘하느냐에 따라 러시아의 패권확장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고 무기력한 대응으로 점철돼온 외교적 수세국면을 반전시킬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사한 전례로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지난 1983년 소련의 대한항공(KAL) KE 007기 격추사건을 계기로 극적인 국면전환을 꾀한 일이 거론된다.

당시 미국 내에서는 소련과의 장기적 대결구도와 핵무기를 필두로 한 군비확장 경쟁에 지친 나머지 미·소간 '타협론'이 부상하고 있었고 대소(對蘇) 강경노선을 천명해온 레이건 행정부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약화돼 있었다.

그러나 대한항공기 피격 사건을 계기로 레이건 대통령은 대소 강경노선을 결정적으로 굳히게 됐고 '힘'과 '명분'의 대결에서 소련에 확고한 우위를 점하는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게 정설이다.

사건 당시 캘리포니아 목장에서 휴양 중이던 레이건 대통령은 상황보고를 접하고는 곧바로 워싱턴으로 귀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 참모들과 구수회의를 거듭한 레이건 대통령은 직접 펜을 들어 소련을 맹렬히 비난하는 대국민 연설문을 작성했다는 후문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연설문에서 "이번 사건은 단순히 미국이나 한국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전 세계와 도덕적 가치에 대한 도전이자 인권과 생명을 경시하는 야만적 행위"라고 묘사하고 소련의 사과를 촉구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어 연설문 발표를 계기로 '스타워즈 계획'으로 불리는 '전략적 방위 계획'(SDI)을 제시하고 의회에 국방비 증액을 요청하고 나섰다.

특히 강력한 경제회복세에 힘입은 미국은 유럽 동맹국들의 지원을 이끌어 내며 대소 봉쇄전략을 강화했고 이는 결국 소련을 몰락의 길로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워싱턴 외교가 일각에서는 이번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사건이 오바마 행정부에게 비슷한 외교적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는 시각이 있다.

닉슨과 포드, 레이건 행정부를 거치며 국가안보 요직을 맡아온 캐슬린 맥팔랜드는 19일(현지시간) 폭스뉴스에 "이번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역사를 만들 차례"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외교적 악재가 겹겹이 쌓인 오바마 행정부로서도 이를 의식하면서 국제적 여론몰이에 나서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를 무대로 한 러시아와의 대결구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외교적 기회로 활용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20일(현지시간) 미국 방송에 잇따라 출연해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반군이 피격에 이용한 SA-11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을 러시아가 넘겨줬다는 정보당국의 증거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기회에 국제사회의 반(反) 러시아 여론을 부각시켜 교착상태에 놓인 우크라이나 정치협상에서 확고한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그러나 지난 1983년 대한항공기 피격사건과는 양상이 다르고 외교적 환경도 크게 차이가 난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소련은 당시 대한항공기 격추 자체를 인정했었지만 이번에는 러시아가 확실히 개입했다는 '증거'를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2010년 천안함 사건과 마찬가지로 분명한 증거가 나와도 러시아가 이를 부인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며 "기술적으로 입증하는 것 자체도 매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논란만 증폭되고 정치협상이 가일층 교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 자체가 경제·군사력의 약화로 크게 흔들리고 있는 점도 유럽 동맹국들과의 결속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또 과감한 결단력을 발휘하지 못해 '햄릿형'이라는 평가를 받아 온 오바마 대통령의 개인적 지도력도 한계로 거론되고 있다.

맥팔랜드는 "오바마 대통령이 남은 2년을 명사들과 어울리기만 하고 친구들과 골프치는데 소일한다면 역사는 그를 지나칠 것"이라고 지적하고 "미국 역사상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한 전직 대통령으로서 남은 30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