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코프·루간스크·도네츠크·오데사는 제정 러시아 시절 우크라 영토 아니었다"…'노보로시야' 야욕 드러낸 푸틴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하리코프, 루간스크, 도네츠크, 오데사는 러시아 제정시대엔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아니었다. 이곳은 ‘노보로시야(Novorossiya)’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이 지난달 17일 모스크바 국영TV 생중계 도중에 한 말이다. 그가 이날 사용한 ‘노보로시야’는 새로운 러시아라는 뜻이다. 1800년대 제정 러시아가 당시 우크라이나 중부지역에 존재했던 코사크 헤티만국, 오스만제국과의 평화 조약을 통해 차지했던 우크라이나 동남부 일대의 영토를 가리키던 말이다. 푸틴이 크림공화국 합병에 만족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을 모두 차지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노리는 푸틴

노보로시야는 1922년 소비에트연방의 일원이었던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로 편입됐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일대에 러시아인이 많이 거주하는 데다 러시아로의 재합병을 주장하는 분리주의자들의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배경이다.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등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은 현재 친러시아 시위대 및 민병대가 장악해 사실상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르세니 야체뉴크 우크라이나 과도정부 총리는 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1991년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우크라이나가 가장 위험한 열흘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독일 나치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승리의 날’(5월9일)과 도네츠크, 하리코프, 루간스크의 주민투표일(5월11일)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이들 지역은 친러시아 민병대가 장악한 후 독립을 선포한 상태다. 야체뉴크는 “푸틴의 생각은 소비에트연방의 세력을 다시 회복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소비에트 제국 황제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우려는 노동절을 맞은 1일 이미 가시화됐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수천명의 시위대가 스탈린 초상화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소비에트 군가를 따라 부르며 향수에 젖었다”고 보도했다.
"하리코프·루간스크·도네츠크·오데사는 제정 러시아 시절 우크라 영토 아니었다"…'노보로시야' 야욕 드러낸 푸틴
◆친러 민병대, 정부군 헬기 격추

복면을 쓴 무장병력을 앞세운 친러시아 민병대의 행동반경도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외신들은 지난달 30일 “오데사의 우크라이나 검문소에서 폭탄이 터져 7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친러시아 민병대의 손에 넘어간 도시만 해도 슬라뱐스크, 세베르스크, 마리우폴 등 13~14곳에 이른다.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우크라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은 “현재로선 확산되는 폭동 상태로부터 하리코프와 오데사 지역을 방어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말했다.

‘노보로시야’가 러시아로 넘어갈 경우 우크라이나 정부는 내륙국가로 전락하게 된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중심으로 흑해 일대를 장악, 지정학적으로 상당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도네츠크 등 동부는 석유화학 제철 산업 등이 발달한 지역이어서 우크라이나에 미치는 경제적 타격도 클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민병대를 견제하기 위해 1일 18~25세 남성을 대상으로 징집령을 내렸다. 뉴욕타임스는 “징집령에 따라 7만여명의 병력이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이어 2일에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친러시아 분리주의 민병대가 장악 중인 동부 도네츠크주 도시 슬라뱐스크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헬리콥터 두 대가 로켓포 공격을 가하던 중 친러시아 민병대가 쏜 대공미사일에 의해 격추됐다. 양측이 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만큼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집결 중인 러시아 군대가 러시아인 보호를 명분으로 국경선을 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 및 러시아 경제 제재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2일 워싱턴DC에서 긴급 회동을 갖는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