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요즘 돈 많이 버는 곳이 '취약 5개국'이라는데…
지난해 글로벌 투자에서 최대 기피대상이었던 ‘F5(취약 5개국·Fragile 5)’의 사정이 달라졌다. 최근 들어서는 가장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또 다른 의미의 ‘F5(투자 유망 5개국·Fabulous 5)’로 변신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하이파이브 국가’라고 부른다.

작년 5월 말 이후 이들 국가는 대규모 자금이탈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지난 한 해 브라질 헤알화와 인도 루피화 가치는 각각 12% 정도 떨어졌다. 터키 리라화와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랜드화 가치는 평균 24% 폭락했다. 하지만 이들 5개국 통화가치는 올해 2월 말 이후 평균 3% 이상 올랐다. 주가는 더 빨리 상승하고 있다.

취약 5개국에 앞서 기피대상이었던 유럽재정 위기국인 PIGS(포르투갈·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도 투자 유망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올 들어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순으로 국채 발행에 성공했다. 이제는 자체적으로 외자 조달이 가능해져 구제금융에 전적으로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다.

의문은 남는다. 불과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어떻게 취약 5개국이 최대 투자 유망국으로 급선회했느냐는 것. 통계기법상 기저효과 등을 감안하면 실물경제 지표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대규모 자금 이탈에 따른 금융시장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외환보유액 개입 등으로 외화유동성 지표는 악화된 국가도 있다.

실물경제가 받쳐주지 않는 주가와 통화가치 상승은 국제 간 자금 흐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통화가치를 감안한 국제 간 ‘자금이동설(m=rd-(re+e)·m:자금유입 규모, rd:투자대상국 수익률, re:차입국 금리, e:환율변동분)’에 따르면 투자대상국 수익률이 통화가치를 감안한 차입국 금리보다 높을 경우 차입국 통화로 표시된 자금을 일으켜 투자대상국 유가증권에 투자하게 된다. 이를 ‘포지티브 캐리’, 반대의 경우를 ‘네거티브 캐리’라고 한다.

지난해 5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출구전략 추진 가능성 시사 이후 미 금리 상승과 달러 강세 기대로 신흥국은 자금 이탈에 시달렸다. 특히 외화가 부족한 신흥국은 더 크게 흔들리면서 ‘취약 5개국’이라는 용어도 나왔다. 올 들어 이들 국가로 자금이 유입된다는 것은 Fed의 금융 완화 기조가 재확인되면서 포지티브 캐리 여건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체리 피킹(cherry picking)’ 성격도 강하다. 체리 피킹이란 열등재나 기펜재가 아닌 한 특정 상품 가격이 떨어지면 반드시 균형가격으로 수렴한다는 시장의 원리를 감안한 저가 매수 투자 전략이다. 위기일수록 돈을 많이 버는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 등이 즐겨 쓰는 투자 기법이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요즘 돈 많이 버는 곳이 '취약 5개국'이라는데…
체리 피킹의 이점은 선진국 헤지펀드가 글로벌 투자를 주도할 때 크게 나타난다. 헤지펀드는 투자자로부터의 신뢰 확보를 생명처럼 여긴다. 이 때문에 펀드매니저들은 △투자이익 극대화 △비용 최소화 △위험 민감화라는 3대 원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만약 6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처럼 수익성이 떨어지고 투자원금이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하면 투자자로부터 ‘마진콜(margin call)’을 당한다. 마진콜이란 펀드가 수익률 급락으로 증거금에 일정 수준 이상 부족분이 발생했을 때 이를 보전하라는 요구를 말한다.

마진콜이 발생하면 디레버리지로 연결된다. 디레버리지란 증거금 부족분을 보전하기 위해 신흥국 등에 투자한 자산을 회수하는 행위를 말한다. 헤지펀드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선진국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지만 신흥국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오는 ‘나비효과’가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황이 역전되면 신흥국 체리 피킹 매력은 크게 부각된다.

이번에는 오히려 자금이 재유입될 때 그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브라질 등 취약 5개국이 자금 이탈 시 금리 인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포지티브 캐리 여건은 더 성숙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주가와 통화가치는 크게 오르고 취약 5개국 정책 당국자일수록 착각에 빠진다. 지나친 낙관론 등과 같은 ‘미신 경제학(Voodoo economics)’도 나온다.

이때 취약 5개국과 같은 위기국의 운명은 두 가지로 나뉜다. 포지티브 캐리 여건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 주가와 통화가치 상승이 ‘부(富)의 효과’로 연결돼 실물경기가 회복한다. 그때는 위기 극복이다. 하지만 또다시 네거티브 캐리 여건이 형성되면 자금이 이탈하고 취약 5개국 경제는 더 악화된다.

취약 5개국이 또 다른 의미의 F5, 즉 ‘투자 유망 5개국·하이파이브’로 변했는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지금은 ‘위장된 혹은 준(準)축복(disguised or quasi-blessing)’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