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 12일 캐나다 토론토 페어몬트로열요크호텔에서 ‘새로운 경제적 사고를 위한 연구소(INET)’ 주최로 열린 콘퍼런스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INET 제공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 12일 캐나다 토론토 페어몬트로열요크호텔에서 ‘새로운 경제적 사고를 위한 연구소(INET)’ 주최로 열린 콘퍼런스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INET 제공
로렌스 서머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12일 토론토에서 열린 ‘새로운 경제적 사고를 위한 연구소(INET) 콘퍼런스’의 마지막 세션에서 미국의 경제 상황을 뉴욕의 존F케네디국제공항에 비유했다.

그는 청중에게 “존F케네디공항을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은 뒤 “최근 이 질문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던지지만 ‘그렇다(Yes)’는 대답은 거의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8조달러가 넘는 막대한 현금을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살포하면서도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는 미국의 경제 상황을 제대로 보수하지 못해 낡아버린 미국의 관문 공항에 빗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조지소로스재단이 설립한 INET 주최 콘퍼런스에 한국 측 단독 미디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장기정체 국면

서머스 교수는 이날 미국의 경기 상황을 ‘장기 정체(secular stagnation)’라고 진단했다. 미약한 회복세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미국의 고용침체는 심각하며 현재진행형”이라고 답했다.

서머스 교수는 “민간수요의 부족과 아웃풋 갭(output gap·실질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의 격차)도 해소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적완화만으로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고 일자리를 만들면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업률 하락은 장기실업으로 인해 구직활동을 포기한 결과일 뿐 고용률은 여전히 금융위기 이후 침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그동안 빚을 지면서 소비를 늘려온 가계가 소비를 줄여 부채를 갚고 저축을 늘린 데다 주요 선진국들도 금융위기 후 긴축기조로 전환하면서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이 민간기업에 경제 회복의 주도권을 넘겨준 채 관망만 하고 있다”며 정책당국의 무사안일을 비판했다.

서머스 교수는 “지금처럼 장기침체 국면에서는 돈만 뿌린다고 해서 경제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자율이 극도로 낮고 시중에 자금이 풍부한 상황인데도 기업들은 투자에 관심이 적고, 은행들은 여신의 만기연장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 그는 “수많은 ‘좀비기업’들이 돈의 힘에 취해 버티고 있다”며 “결코 건강한 경제 환경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인프라 투자 통한 수요진작 필요

서머스 교수는 대안으로 정책당국에 공항, 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주문했다. 민간 부문이 만성적인 수요 부진에 빠져 있어 스스로 충분한 고용과 성장률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인위적인 수요 창출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기조연설 모두에 낙후된 뉴욕 존F케네디공항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건설직 노동자의 실업률이 두 자릿수에 달한다면서 노후 인프라의 대대적인 교체를 통해 대규모 일자리 창출, 실업급여 등 사회보장성 지출 감소 등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프라 투자가 국가 부채만 키울 뿐이라는 지적에 대해 “지금처럼 실질이자율이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정부가 경제회복을 위해 공공투자를 기피하는 것이 타당한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적절한 투자를 하지 못해 낙후된 인프라를 방치하는 것은 재정위험 못지않게 후세에 대한 부담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머스 교수는 중산층과 빈곤층의 소득 증대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세제 개편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금융위기 이후 실질임금 상승률이 정체되면서 중하위층의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있는 만큼 보다 적극적인 세제 개편을 통해 이를 보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

그는 “미국의 상위 1%와 하위 1%의 소득격차가 1940년대 25배였다면 지금은 250배에 달한다”며 “미국의 빈부격차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로렌스 서머스는 28세때 하버드 종신교수…클린턴 정부 재무장관 역임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60)는 28세에 하버드대 종신교수로 임명될 정도로 천재성을 인정받은 미국 대표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유대계 미국인인 그는 16세에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입학했고 졸업 후 하버드대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듬해인 1983년 종신교수로 임명됐다. 1993년 경제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존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수상했다.

1991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거쳐 1993년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1995년 미 재무부 부장관을 거쳐 클린턴 정부 시절 45세에 로버트 루빈의 뒤를 이어 재무부 장관에 올랐다. 2001년부터 5년간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1기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의 집안도 화려하다. 부모 모두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를 지냈으며 삼촌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사무엘슨 MIT 교수, 외삼촌 역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케네스 애로 스탠퍼드대 교수다.

토론토=강영연/이심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