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할 일 민간위탁…세계는 예산 실험 중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는 영국 정부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다. 복지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마이너스 성장’ 여파로 세금 걷기가 더욱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행정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면서 예산은 적게 드는 ‘스마트’한 정책이 필요했다.

영국 법무부는 매년 95억~130억파운드(약 16조~22조원)의 세금을 잡아먹는 재범 관련 비용에 주목했다. 60%에 이르는 ‘출소 1년 내 재범률’ 때문에 검찰·경찰, 법원, 교정시설 운영 등에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갔던 것. 재범률만 떨어뜨리면 예산 절감은 수월해 보였다. 관건은 재소자 사회적응 프로그램을 ‘얼마나 정교하게 운영하느냐’와 ‘어떻게 운영비를 마련하느냐’였다.

영국 법무부는 민간의 효율과 자본시장의 자금조달 기능에서 해법을 찾았다. 2010년 9월 피터버러 교도소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세계 첫 사회성과연계채권(SIB·Social Impact Bond)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저성장으로 세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주요국들이 늘어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세금으로 운영하는 각종 사업을 ‘민간 투자’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 각종 사회문제를 풀고 투자 수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민간의 ‘소셜투자’를 활용해 예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3년 전 도입한 SIB를 일자리 창출, 청소년 교화 등 13개 사업으로 확대했다.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도 SIB를 도입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SIB란 정책 과제를 위탁받은 민간 업체가 목표를 달성할 경우 정부가 관련 사업비에 이자를 더해 지급하되, 실패하면 단돈 1원도 주지 않는 ‘성과급’ 형태의 계약이다.

복지재원 새 해법…글로벌 '소셜투자' 붐

민간 업체는 정부와 맺은 계약을 토대로 채권을 발행, 투자자로부터 사업비를 마련한다. 피터버러 SIB의 경우 지난달 나온 중간평가 결과 전국 평균 재범 빈도가 3년간 11% 증가하는 동안 피터버러 SIB 대상자만 12%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프랑스에서는 사회적 기업들이 정부 예산 절감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연매출이 8000억원에 이르는 ‘사회적 대기업’ 그룹SOS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가 10년 전 개설한 ‘노숙자 치료 쉼터’는 정부가 직접 노숙자 건강 문제를 다룰 때에 비해 관련 비용을 50~75% 절감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벤처캐피털인 어큐먼펀드는 저개발국 원조를 ‘단순 기부’에서 ‘투자’로 바꿔 효과를 극대화했다.

아프리카에 말라리아 치료제를 지원하는 대신 모기장 제조 기술 및 장치 도입비를 현지 기업인에게 대준 것. 이 회사가 생산한 수천만장의 모기장 덕분에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말라리아로부터 해방됐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에서 벌어진 복지 논쟁은 ‘복지 예산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만 맞춰져 있을 뿐 ‘얼마나 효율적으로 세금을 쓰느냐’는 논외였다”며 “늘어나는 복지 수요로 정부 부담이 커지고 있는 한국도 민간 기업과 자본시장을 활용한 투자 형태의 예산 집행을 고려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 소셜투자

social impact investment. 범죄 빈부격차 오염 실업 등 각종 사회·환경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착한’ 투자. 기부와 달리 투자 수익을 추구한다.

런던·파리=오상헌/조진형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