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력 태풍 하이옌이 휩쓸고 간 필리핀에는 국제사회의 원조가 속속 도착하고 있지만 최대 피해지역인 중부 레이테의 주도 타클로반에는 정작 이런 도움의 손길이 닿지 못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피해로 도로와 운송체계 등 인프라가 대부분 마비되면서 태풍이 할퀴고 간 지 닷새째인 13일에도 상당수 구호물자와 인력이 마닐라나 세부 등에 발이 묶여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국제 구호단체 중 하나인 국경없는의사회(MSF)가 대표적인 사례다.

MSF는 의사 15명과 필수 의약품 등으로 긴급 의료진을 꾸려 하이옌이 타클로반에 상륙한 바로 다음날인 9일 세부에 도착했다.

하지만 12일까지도 타클로반으로 가는 이동수단을 구하지 못해 나흘이나 세부섬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MSF 관계자는 "필리핀 당국과 접촉하고 있지만 타클로반 공항은 필리핀 군만 사용하고 있어 언제 레이테 섬에 들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마닐라에 머무르는 발레리 아모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국장도 "우리가 할 일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멀리 떨어진 지역사회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타클로반에 도착해서도 건물 잔해들로 길이 막히고 운송수단도 없어 필요한 수준만큼 구호물자를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필리핀 당국도 곤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레이테섬에 있는 군인 1천명을 수용하는 군 건물이 무너지는 등 군과 경찰 역시 대부분 이번 재난의 피해자들이다.

공군이 C-130 수송기를 동원해 타클로반을 오가며 물과 식량 등 물자와 이재민들을 운송하고 있지만 전기가 끊겨 해가 지면 착륙이 불가능하다.

마르시아노 게바라 중령은 지금까지 40만 파운드의 구호물자를 운송하고 이재민 3천명을 섬 밖으로 옮겼지만 한계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특히 깨끗한 물이 부족하다.

식량이 없어도 물이 있으면 생존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7천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지리적 특성도 걸림돌이다.

인근 섬에서 집중 피해지역인 레이테섬과 사마르섬에 페리로 물자를 실어나르고 있지만 속도도 더디고 운송량도 부족하다.

고립돼 피해가 알려지지 않은 도서 벽지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신 수습은커녕 사망자 신원 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제2항공사단 지휘관인 로메오 포키스 소장은 "인력과 전문가도 부족하고 시신을 수습하더라도 신원확인을 위해 이를 옮길 수단 역시 한계가 있다"며 "신원 확인이 안 되는 시신은 공동으로 매장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장소도 없다"고 말했다.

(타클로반 AP=연합뉴스) inishmor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