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 샤피로 이스라엘 미디어랩 교수(왼쪽부터), 존 브래드포드 테크스타즈 영국대표, 이정수 플리토 대표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한국형 창조경제를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텔아비브=임원기 기자
레비 샤피로 이스라엘 미디어랩 교수(왼쪽부터), 존 브래드포드 테크스타즈 영국대표, 이정수 플리토 대표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한국형 창조경제를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텔아비브=임원기 기자
“정부가 벤처기업에 직접 돈을 쥐어주는 정책은 심각하게 재고해야 합니다. 자금지원은 창조경제와 아무 관계도 없을 뿐 아니라 어떤 문제에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됩니다.”

“이스라엘이든, 미국이든, 영국이든, 한국과는 상황이 너무 다릅니다. 한국은 한국만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따사로운 지중해의 햇살이 내리쬐는 텔아비브. 존 브래드포드 테크스타즈(Tech Stars) 영국 대표(총괄사장), 레비 샤피로 이스라엘 미디어랩 교수, 국내 벤처기업 플리토의 이정수 대표가 한국형 창조경제를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브래드포드 대표는 세계 최대 벤처창업 지원기관인 테크스타즈의 영국 사업 총괄책임자로 이 분야에선 ‘슈퍼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샤피로 교수는 이스라엘에서 벤처투자회사 지미펀드를 운영하면서 한국 정부와도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스라엘 정부와 아산나눔재단이 주최하고 한국경제신문이 후원한 벤처경진대회 ‘스타트 텔아비브’의 한국 우승자다.

▷샤피로 교수=창조경제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화두다. 성장률이 둔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해졌다. 모두들 그 것을 벤처 창업에서 찾고 있다.

▷이 대표=이스라엘과 영국, 한국의 창조경제 정책이 모두 다른 것 같다. 이스라엘은 20년 전 ‘창업국가’를 기치로 내걸고 정부가 해외 자본을 유치해 벤처기업을 키우는 데 중점을 뒀다. 영국은 주로 규제 완화를 통해 창업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정부가 직접 벤처기업에 자금을 대는 데 주력하는 느낌이다.

▷브래드포드 대표=창업 지원 수단은 자금 지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벤처 창업 지원의 초점이 너무 자금 지원에 맞춰져 있다. 자금 지원은 벤처가 겪는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문제를 지연시키기만 할 뿐이다. 특히 정부가 벤처에 직접 돈을 주는 것은 벤처기업이 갖고 있는 사업상 한계와 경영진의 낮은 자질 문제 등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샤피로=정부가 시장에 자금을 자꾸 투입하면 경쟁력 없이 목숨만 연명하는 ‘좀비벤처’를 양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한국은 정부 자금 말고는 기대할 게 많지 않다. 특히 해외에 기반을 둔 벤처캐피털이 한국에 투자할 이유가 별로 없다. 한국 벤처기업들이 국내 시장만 겨냥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해외 서비스에 나설 역량도 낮기 때문이다.

▷샤피로=이스라엘은 창업 벤처에 투자되는 자금의 70% 이상이 해외에서 유입된다. 하지만 한국은 해외 벤처캐피털의 투자가 많지 않다.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이 벤처에 투자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들은 투자회사가 아니다. 이들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현재로선 무리다.

▷브래드포드=영국은 3~4년 전에 벤처 창업 열풍이 가장 뜨거웠다. 왜 그랬을까.

▷이=글로벌 금융위기 때 아닌가.

▷브래드포드=맞다.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성장률이 제로(0)로 떨어지고 실업률이 급등하고 경제가 어려워졌다. 어디서든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정부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했고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때 창업 붐이 일었다. 어차피 고생할 거 자기 일을 하자는 거였다.

▷이=한국은 작년엔 좀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성장률이 3~4%대는 나온다. 성장 여력이 있다는 것은 기업이나 정부나 투자 여력이 있다는 뜻이다.

▷브래드포드=창조를 위해선 파괴를 해야 한다. 기존 모델을 파괴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한국은 아직 기존 모델로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아직 여유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디지털 수준이 최소 5년가량 앞서 있다.

▷샤피로=한국은 실업률도 다른 선진국보다 낮다. 그만큼 절박함이 덜하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과거 오랫동안 해외에서 나라 없이 떠돌던 경험이 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래서 여러 사람들과 섞이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익숙하다. 반면 한국은 그런 문화 자체가 없다. 창업과 가까운 문화는 아니다.

▷이=이스라엘 벤처기업에 대한 해외기업 투자 비중이 70%를 넘는 이유는 해외에 있는 유대인 자본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은 이걸 따라할 수 없다.

▷브래드포드=한국은 대기업의 힘을 활용하고, 정부가 직접적인 자금지원을 줄이는 대신 멘토링을 늘리는 방향으로 벤처 정책을 펴는게 좋다. 무엇보다 한국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은 여전히 좋은 조건을 많이 갖고 있다.

텔아비브=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