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지난 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그는 이날 “미국의 경제 회복이 예상보다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월 85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사들여 시중 유동성을 확대하는 현행 3차 양적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지난 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그는 이날 “미국의 경제 회복이 예상보다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월 85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사들여 시중 유동성을 확대하는 현행 3차 양적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시장은 미국 중앙은행(Fed)이 9월에 채권 매입 규모를 축소할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마이크 페롤리는 이달 초 한 세미나에서 “Fed가 9월에 자산 매입 규모를 월 850억달러에서 700억달러로 150억달러 줄일 것이 확실시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Fed의 채권 매입 축소는 이미 주가에 반영돼 있기 때문에 Fed가 실제 행동에 나서더라도 시장에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출구 전략을 연기하면 시장이 충격에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페롤리를 비롯한 월가 전문가들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Fed가 지난 17~18일 개최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월 850억달러의 채권 매입 규모를 유지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다만 양적완화 축소가 연기되면 금융시장이 충격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와 S&P500 지수는 18일 FOMC 회의 이후 급등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19일과 20일 이틀 동안은 크게 하락하면서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납했다. 지난 5월부터 시장을 짓눌러온 출구 전략에 대한 불확실성이 다시 부각되면서다.

○변동성 커지는 금융시장

[글로벌 금융시장 안갯속으로] '출구' 앞에서 머뭇거린 Fed…10월 고용·주택지표만 바라본다
벤 버냉키 Fed 의장이 지난 5월 의회 청문회에서 처음 출구 전략 가능성을 시사한 이후 뉴욕 증시는 큰 폭으로 출렁거렸다. 지난해 9월부터 3차 양적완화에 의존해온 랠리가 끝날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흔들리던 시장은 지난 7월부터 안정을 되찾았다. 투자자들이 ‘Fed의 출구전략과 금리 상승은 미국 경제가 견조한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받아들이면서다.

하지만 9월 FOMC 회의에서 Fed가 예상을 깨고 출구전략 연기를 결정하면서 금융시장은 다시 한번 혼란에 휩싸였다. 그만큼 미국의 거시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우려가 퍼지면서다. 버냉키 의장은 FOMC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고용시장 상황이 우리의 기대와는 아직 거리가 있다”며 이 같은 우려에 불을 지폈다. 제프 시모어 트라이앵글 자산운용 대표는 “Fed의 양적완화 축소 연기 결정은 미국 경기가 다시 깊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나의 우려를 확인시켜줬다”고 말했다.

양적완화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다 투자자들의 위험 감수성향도 줄어들면서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 가격은 다시 치솟고 있다. 이달 초 3%에 육박했던 미국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금리)은 20일 연 2.735%로 주저앉았다. 채권 수익률은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가 하락하면서 미국 달러 가치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일각에서는 지난 5월 이후 신흥국을 빠져나온 투자금이 다시 흘러들면서 연초의 통화전쟁 논란이 재연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출구전략 언제까지 연기되나

시장 전문가들은 당분간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Fed가 언제 채권매입 축소를 개시할지 가늠하기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버냉키 의장은 FOMC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Fed의 예상대로라면 연내에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지만 어디까지나 경제지표가 받쳐줄 때에 한해서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당분간 주요 경제지표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지표는 역시 고용지표다. Fed가 이번 FOMC 회의에서 출구전략을 연기한 가장 큰 이유가 기대보다 부진한 고용지표였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의 8월 비농업분야 일자리 수는 16만9000개 늘어나는 데 그쳐 시장 전망치인 17만5000개를 크게 밑돌았다. 10월4일에 발표되는 9월 고용지표도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출구전략 개시 시점은 더욱 늦춰질 수 있다.

미국 주택 및 소비 관련 지표도 놓칠 수 없다. 24일(현지시간)엔 7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케이스-실러 지수가 발표된다. 이 지수는 미국 20대 대도시 주택가격 움직임을 나타낸다. 2분기 경제성장률 확정치(26일), 8월 개인소득과 개인소비(27일) 등도 눈여겨봐야 할 지표다.

워싱턴 정가의 ‘예산전쟁’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관심사다. Fed는 이번 출구전략 연기의 배경 중 하나로 재정정책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새 회계연도 예산안과 부채한도 상향조정을 놓고 백악관과 공화당이 현재와 같은 ‘치킨게임’을 계속할 경우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Fed는 그동안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재정정책의 빈자리를 채워왔다.

금융서비스회사인 코웬의 톰 오마라 전무는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당분간 투자자들은 관망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주식 시장은 거래량은 낮고 변동성은 큰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