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선거 이용 의도' 의혹…가족은 장지 놓고 신경전

'민주화의 거인'이 하루하루 병과 치열하게 싸우는 사이 병상 밖에서는 정치권이나 가족들이 잇속 챙기기에 골몰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8일째 입원 중인 넬슨 만델라(94)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현재 상태를 둘러싸고 엇갈린 주장들이 계속되고 최근에는 식물인간 상태라는 보도마저 나오자 혼란은 더해가는 모습이다.

정부와 가족이 "여전히 안정적이다" "의식도 있다"며 보도를 부인했지만 일부에서는 의심의 눈총을 거두고 않고 있다.

만델라의 위상을 활용하려는 정략적인 이유 등으로 병세를 솔직하게 못 밝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5일 AP,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의료 전문가들은 만델라가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는 상태면 현재 회복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노령의 환자가 인공호흡기에 매달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병세가 매우 위험해질 가능성도 비례해 늘어난다는 것이다.

현지 의사인 아드리 콕은 "너무 쇠약해 스스로 호흡을 못한다는 뜻이니 회복될 예후가 아주 나쁘다고 본다"며 "만델라의 상태가 '매우 위험하다'(perilous)는 보도가 나왔는데 타당한 표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만델라의 공식 전기 작가인 샬린 스미스는 "사실상 그는 타계했다.

이 세상을 떠났다고 봐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앞서 AFP통신은 4일 만델라 자녀 유해의 이장 문제를 둘러싸고 가족이 지난달 26일 법원에 제출한 문건을 입수, "만델라가 영구적 식물인간 상태로 생명유지장치를 끄라는 의료진 권고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현 남아공 정부는 펄쩍 뛰었다.

정부는 성명에서 '만델라는 위독하지만 안정한 상태이고 주치의에 따르면 식물인간 상태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만델라의 정치적 후광에 여전히 기대는 현 집권층의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제이콥 주마 대통령과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부패와 파벌 문제가 심한데다 핵심 지지기반인 흑인 사이에서도 빈부격차를 벌려놨다는 비판에 인기가 급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마 대통령 측이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ANC의 얼굴과 같은 만델라를 '볼모'로 지지층을 결집하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그러나 ANC는 "존경하는 마디바(만델라의 부족명이자 그의 존칭)의 회복을 기원하는 모습이 무슨 잘못이냐"고 정치적 의도를 부인했다.

만델라 가족도 사정이 복잡하다.

최근 만델라의 사후 장지를 둘러싸고 법정공방을 불사해 "만델라가 주변 사람을 알아본다"는 가족의 낙관적 주장도 신뢰를 잃고 있다.

예전부터 가족은 만델라의 실제 출생지인 음베조와 그가 자신의 고향이자 장지로 지목한 마을 쿠누 중 어디에서 장사를 지낼지를 두고 갈등을 겪었다.

만델라의 맏손자이자 음베조의 추장인 만들라(39)는 2011년 자기 마을에 조부모를 모시겠다면서 만델라의 자녀 유해를 쿠누에서 음베조로 이장했다.

하지만 쿠누를 장지로 지지하던 다른 가족은 최근 만델라의 병세가 심각해지자 소송까지 내 4일 유해를 다시 옮겨왔다.

만들라는 "실망스럽다"며 반발했지만 만델라의 투병은 제쳐놓고 장지 다툼만 계속한다는 빈축이 쏟아졌다.

남아공 민주화 운동의 원로인 데스몬드 투투(81) 명예 대주교는 만델라 가족에게 성명을 내 "만델라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자"며 화해를 촉구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t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