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가 한번도 갖지 못했던 자유를 얻었다.”

쿠바 수도 아바나에 사는 라모나 모레노(61)는 14일(현지시간) 이민청 앞에서 여권을 새로 발급받은 뒤 이렇게 외쳤다. 평생 레스토랑에서 일해온 그는 이민청 직원을 붙잡고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가 어디인지 말해달라”며 감격스러워했다.

북한과 함께 지구상의 마지막 폐쇄적 공산주의 국가로 분류되는 쿠바에서 반세기 만에 해외여행이 자유화됐다. 쿠바 정부는 이날 여권을 가진 국민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출국할 수 있도록 해외여행 규제를 완화했다고 AFP 등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해외여행 러시를 예고하듯 아바나의 여행사와 이민청 앞에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긴 줄이 이어졌고, 외국 대사관에도 비자 발급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쿠바 경제개혁의 신호탄

쿠바 정부는 1959년 공산주의 혁명 이후 출국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어 자국민의 발을 묶어왔다. 출국 전 정부로부터 ‘백색 카드’라 불리는 허가증을 받고, 방문국의 초청장도 있어야 했다. 평균 월수입이 20달러 수준인 국민들에게 300달러가 넘는 출국 신청비와 200~300달러씩 드는 초청장 신청비도 높은 벽이었다.

또 최대 11개월까지 해외 체류를 연장할 수 있지만 30일마다 본국으로 돌아와 기간을 갱신해야 했다. 달라진 법에 따라 쿠바 국민은 여권과 항공권, 방문국 비자만 있으면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됐다. 최대 체류 기간도 24개월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해외여행 자유화는 2010년 경제개혁안 발표에 따른 후속 조치다. 피델 카스트로로부터 2006년 권력을 물려받은 친동생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2010년 “쿠바식 경제모델은 더 이상 우리한테도 통하지 않는다”며 개혁을 선언했다.

쿠바 정부는 개혁의 1단계로 510만명에 달하는 공무원을 100만명으로 줄이는 계획을 세웠다. 공무원은 그동안 쿠바 전체 고용 인력의 90%였다. 공무원을 줄이면서 민간 부문 규제는 풀었다. 민간기업을 허용하고 자영업자를 육성해 해고된 공무원들을 흡수시켰다. 개인의 주택과 자동차 매매를 허용했고, 농업 개혁도 실시했다.

◆‘반쪽짜리 자유화’ 논란도

전문가들은 쿠바 국민의 해외여행이 늘면 국외 장기 체류자의 해외 송금 등 외환 유입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쿠바의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불법 이민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자국 영토에 발을 디딘 쿠바인들에게 희망자에 한해 합법적 거주를 허용해왔다. 미국 남부 플로리다주에만 약 100만명의 쿠바 이민자들이 살고 있다. NYT는 오바마 행정부가 과연 모든 쿠바인들이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을지 흥미롭게 주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임의적 출국 제한 조치가 그대로 남아 있어 ‘반쪽짜리 자유화’라는 비판도 있다. 쿠바 정부는 지난해 10월 여행 자유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출국을 제한할 수 있다는 단서 규정을 남겨뒀다. 이 규정은 민감한 국가 정보에 관여했던 사람이나 정부가 많은 돈을 들여 교육한 전문직 노동자, 특히 반체제인사들에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비용도 문제다. 오스카라고 밝힌 쿠바인은 “새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107달러를 써야 하고, 2년마다 재발급받을 때 120달러가 든다”며 “1000만명이 넘는 쿠바 인구를 감안할 때 정부의 새로운 수익원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