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 북부 비엔나시의 도요타딜러숍 쿤타이슨스도요타. 일요일인 2일(현지시간) 오후 이곳에서 만난 딜러 토니 스미스(48)는 “지금은 너무 바쁘다. 다음에 이야기하자”며 기자의 취재 요청에 손사래를 쳤다. 딜러들은 대부분 구매 상담 중이었다. 야외 전시장에도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같은 날 뉴저지주 대형 쇼핑몰인 쇼트힐몰. 이곳은 메이시스 노드스톰 등 대형 백화점 5개가 몰려 있는 동부지역 최대 쇼핑몰이다. 12만㎡(약 3만6500평)에 달하는 땅에 자리잡고 있어 여유롭게 쇼핑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이날 오후 주차장에서 빈 자리를 찾는 데만 한 시간가량 걸렸다. 쇼핑객들에게서 허리케인 ‘샌디’가 남긴 상처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자동차 판매 내년에 더 증가할 듯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꿈틀거리고 있다. 소비경기의 선행지표인 자동차 판매가 그렇다. 버지니아주의 현대자동차 페어팩스딜러숍에서 만난 마리아 차베스(52). 신형 아제라(한국명 그랜저)를 사기로 결정한 그는 “10년 만에 차를 새로 구입한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딜러 존 김은 “금융위기 이후 억눌려 있던 소비가 살아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레이드 빅랜드 크라이슬러 닷지브랜드 사장은 최근 LA모터쇼에서 “자동차업계는 재정절벽 우려와 동떨어져 있다”며 “내년이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굴러다니는 자동차의 평균 차령은 11년이다. 20%는 16년이 넘었다. 엄청난 잠재수요가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드의 11월 소형차 판매량은 전월 대비 6.4% 늘어났다.크라이슬러는 판매량이 14% 늘 것으로 예상했다.

오토론(자동차할부금융)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6~9월에만 180억달러 증가해 잔액이 7680억달러로 늘어났다. 최근 4년간 최고 수준이다. 폴 테일러 미국자동차딜러협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주택 가격 상승과 은행의 저금리가 자동차 수요를 끌어당기고 있다”고 말했다.

○쇼핑센터 ‘주차난’

뉴저지주 쇼트힐몰에는 까르띠에, 구찌, 샤넬,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고가 브랜드 점포가 많다. 160여개의 매장 중 한산한 곳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뉴욕주는 세금이 비싸 맨해튼에서 한 시간을 운전해 왔다는 회사원 래비 시드(34)는 “살 제품을 골라놓고 잠시 다른 매장에 다녀왔더니 그 사이 다른 손님이 사가 낭패를 봤다”고 말했다. 남성복 휴고 보스 매장의 한 점원은 “작년에도 경기가 꽤 좋았지만 올해는 손님이 20%는 더 많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맨해튼 매디슨애비뉴의 명품 백화점 바니스는 ‘블랙프라이데이(추수감사절 다음날로 소매업체들이 대규모 할인행사를 시작하며 연말 쇼핑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날)’인 지난달 23일보다 늦은 28일부터 세일을 시작했다. 굳이 월마트 같은 대형마트처럼 앞당겨 세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손님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겨울 인기 상품인 외투나 장갑 등은 아직 세일 품목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점원들은 “겨울상품은 크리스마스가 지나야 세일에 들어갈 것”이라며 “하지만 그때까지 물건이 남아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귀띔했다.

○줄어드는 가계부채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것은 무엇보다 가처분 소득이 늘어난 덕분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의 부채조정(디레버리징)이 수년째 지속돼 재무구조가 개선되며 이자비용이 줄어들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가계부채는 11조3000억달러로 전 분기보다 740억달러 감소했다. 3분기 연속 감소세였다.

오토론 학자금대출 등이 늘었지만 전체 가계부채가 감소한 것은 주택 관련 대출이 같은 기간 1200억달러 줄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 관련 대출은 9월 말 기준 8조300억달러로 최근 6년간 최저 수준이다.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려 쓰는 홈론, 압류 주택 감소 등의 영향이다.

이동훈 뉴욕 연방은행 선임이코노미스트는 “오토론과 학자금대출, 신용카드 사용 등이 늘고 있는 것은 소비자들의 자금 사정이 점차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뉴욕=장진모/유창재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