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보다 이집트가 더 문제"
시리아 군사 지원 논의 쑥 들어갈 듯

리비아·이집트의 반미 폭력 시위로 미국 공관이 피습되고 미 외교관 4명이 숨진 사건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對) 아랍권 정책이 큰 위기에 처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12일(현지시간) 진단했다.

이번 사태는 아랍권을 '미국 친화적'으로 만들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에 가장 심각한 도전으로, 이를 계기로 미국이 아랍 정책을 다시 한 번 철저히 검토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이슬람권과 화해를 표방해왔으며 작년 '아랍의 봄'도 지지하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리비아에서는 풍전등화에 처한 시민군을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공습으로 구원했다.

이집트에서도 지난 6월 민주적으로 선출된 민간 정부에 권력을 신속히 이양하라고 이집트 군부를 압박,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을 도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아랍 혁명 이후 들어선 리비아, 이집트의 신생 정권들이 자국 내 반미 세력에 맞설 능력 또는 의사가 있는지 여부가 불확실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WP는 지적했다.

특히 장기적으로는 리비아가 아닌 이집트가 훨씬 더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스페인어 케이블TV 텔레문도와 인터뷰에서 "이집트를 동맹으로도, 적으로도 간주하지 않는다"며 "내 생각에 양국 관계는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간 미국의 아랍권 최대 동맹국이었던 이집트에 대한 오바마의 이 같은 발언은 무르시 정부가 이번 사태에 미온적으로 대응한 데 따른 미국의 우려와 불만을 나타내는 것이다.

무르시 대통령은 사태 발생으로부터 24시간이 지나서야 폭력 시위대에 대해 가벼운 비난 성명을 냈을 뿐이다.

게다가 무르시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은 문제의 '이슬람교 모욕 영화'에 대한 항의 시위를 계속할 것을 촉구했다.

카이로 주재 미국 대사관이 이전에도 세 차례나 시위대의 공격을 받았으나 이집트 경찰 당국이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집트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리비아와 크게 대조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리비아인들이 미 외교관들에 안전한 장소를 찾아주고 숨진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대사를 병원으로 옮기는 등 리비아 당국이 미국을 돕기 위해 노력했다며 "이번 공격으로 미국과 리비아의 유대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리비아 정부는 사건 직후 즉각 분명하게 유감을 표명했다.

오바마 밑에서 백악관 중동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낸 데니스 로스는 "리비아 대중은 매우 친미적이어서 이번 사건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의 아랍 정책이 이집트보다는 리비아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큰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리비아의 문제는 효율적인 통치체제의 부재, 치안 문제 등 기술적인 '능력'의 차원인 반면, 이집트의 문제는 오랫 동안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였던 무슬림형제단이 집권한 데 따른 '의사'의 문제에 가깝다는 것이다.

로스 전 백악관 특별보좌관은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은 자기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며 이집트가 "외부 경제지원·투자를 끌어들이고 싶다면 치안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지정학적으로 리비아 문제는 대체로 자국 내로 국한되는 반면 이집트의 진로는 이스라엘·이란 등 주변 지역 전체와 미국의 아랍 정책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아 미 행정부의 고민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시리아에서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기존 방침이 이번 사태로 인해 더욱 확고해질 것으로 WP는 내다봤다.

알 카에다 등 과격 이슬람 무장세력이 시리아 반군에 관여하고 있다는 미국의 의구심이 걷히지 않은 가운데 이번 사태로 시리아 반군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촉구하는 논의가 주춤해질 것으로 WP는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jhpark@yna.co.kr